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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화동오로라 Nov 01. 2020

아이들이면 된다


우리 회사는 교육과 영업이 분리되어있다. 교사는 수업만 담당하고 영업은 영업사원분이 따로 있는 시스템인데 코로나 시대를 맞닥뜨리면서 수업이 줄어드니 어린이집 보조교사나 그 외에 아르바이트로 투잡을 하는 교사가 늘고 있다고 했다. 회사에서 교사라는 고급 자원을 이렇게(?) 둘 수 없다 생각하여 수업과 영업을 같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었고 교사 경력 몇 년 이상의 자격조건을 갖추면 영업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추가 수입에 대한 것도 솔깃했지만 같은 일을 오랜 기간 하게 되니 하루가 금방 지나가고 일주일, 한 달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새로운 무언가가 없을까 고민하던 때였다. 그런데 막상 다른 일을 하려니 다시 시작해야 하는 어려움과 귀찮음이 있었고 카페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싶다 했지만 막내로 들어가 사람들과 부대낄 자신도 없었다. 새로운 일에 대한 갈증이 있을 때쯤 영업을 병행할 수 있다는 소식은 내게 복음과도 같았다.


 교육을 받아야 한다. 주말을 이용해 자원하는 교사들은 코엑스 어디 어디 세미나실에 모였고 본부장님의 새로운 시스템 도입에 대한 배경 설명 후 교사 출신 영업사원의 성공사례도 들었다. 월 1000만 원 수익을 내는 일명 '월천 공주'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을 굳혔다. 영업이다!

 교사들은 일주일 내내 일을 해도 한정된 시간이 있기 때문에 월 300만 원을 넘기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주말을 이용해 수업을 하시는 선생님들은 월 400만 원까지 가능하다는 건 들었지만 주말까지 일을 하고 싶진 않았다. 300만 원도 겨우 버는데1000만 원이라니?!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돈을 떠나서 새로운 일에 대한 갈증도 해결되고 수익도 나쁘지 않으니 나는 교사와 영업을 병행하다가 영업이 적성에 맞는다면 당장이라도 교사를 때려치워야지라는 생각으로 영업교육에 열을 올렸다. 주말 교육 내내 꼼꼼히 필기하며 영업인으로서의 마음가짐도 다져본다. "영업을 하려면 옷차림도 신경을 써야 하니 백화점도 들러봐야지, 화장법도 익히고 미용실도 종종 다니면서 관리해야겠어!" 마음은 이미 나도 월천 공주가 되어있었다.


 교육 이수를 했고 원하는 지역 센터를 1 지망, 2 지망으로 적어냈다. 원하는 지역이 배정 되길 기다리고 있는데 뜬금없이 마포 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종로와 강남을 차도 없이 다니는 것도 쉽지 않은데 마포까지 추가로 다녀야 한다니 엄두가 나질 않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영업을 하려면 차가 필수로 있어야 하고 내가 원하는 종로 강남 뿐 아니라 의정부, 분당 등 필요하다면 지방까지 다녀야 했던 거였다. 그 먼 거리들을 다니며 새로운 영업의 세계에 뛰어들 여력이 내겐 없다. 나는 팀장님께 잘못 생각했던 거 같다며 정중히 거절의 의사를 전했다. (월천 공주님은 정말 대단하신 거였다;)




하루 이틀 뒤,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 몇 통화가 와 있었고 본부장님의 카톡이 왔다. 주말 교육 때 몇 번 봤다, 경력도 있고 눈여겨봤고 좋게 봤었다, 영업직을 안 하신다고 하니 본사 직원으로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며.

 본부장님의 존재를 나는 알아왔지만 이번 교육을 통해서 본부장님은 내 이름을 처음 알았다며 얼굴 보며 악수하게 되었다. 교육장에서도' 000 선생님' 반갑게 맞아주신 거, 나도 기억이 난다.


본부장님의 문자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했지만 좋게 봐주신 것에 대한 기분 좋음이 있기도 했다. 같은 일이지만 새로운 경험, 내가 원하던 바다. 마음은 이미  명찰을 달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삼성역 거리를 활보하는 직원이 되어 있었지만, 좀 더 생각해보겠다며 통화를 마무리했다.

 이직은 중요한 일이니 남편과도 상의해야 한다. 본부장님의 본사 직원의 제안.  손가락 꼽아가며 장단점을 다이어리에 표로 작성하며 하루 동안의 고민을 듣자마자 남편의 단 한마디만 돌아온다.


"나는 네가 계속 교사를 했으면 좋겠어, 그 아이들은 그럼 누가 사랑으로 가르치고 돌봐주니?"

"뭐?! 압구정 아이들이 부모가 없어, 집이 없어, 돈이 없어? 나보다 더 부자야, 나 없이도 집으로 오는 교사가 한두 명이 아닌데?!"

"....... 나 어릴 때, 집에서도 때리고 밖에서도 때려서 사람 아니게 살고 싶을 때 있었어. 그때마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안아주고 잘한다고 칭찬해주더라. 그런 작지만 따뜻한 기억들 때문에 내가 그래도 지금 사람 노릇하고 있는 거 같아. 난 네가 결코 아이들에게 작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이들이 예뻐서 평소에도 사진과 동영상들을 들춰보며 "내 새끼, 내 새끼"하며 잇몸이 만개한다. 아이들 사랑은 내 DNA에  X, Y염색체에 B염색체 (baby) C염색체 (child) 까지 있는 건 아닌지 할 정도다. 내 마음을 아는지 아이들도 내 이름을 부르며 좋아 하는데 "우리 집에서 자고 가요", "우리 집에서 밥 먹고 가요", "내일 또 오세요"  하고, 이제 초인종 누르고 막 들어와서 앉았는데도 "수업 끝날 시간 아직도 많이 남았지요?" 라며 끝날 때까지 5번 이상은 꼭 물어보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 생각에 무거운 마음이 있었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그런데 남편이 정면으로 들어와 묻는다. '아이들'이라고. 


본사 직원으로 직장 상사와 동료 간의 알게 모르게 느낄 스트레스도 있을 것이다. 이유가 '아이들' 때문만은 아닐 수 있다. 내가 잘 하는 일이고 다른 일보다 쉽고 익숙하다. 수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어 남들은 힘들게 일해서 받는다는 월급을 나는 이렇게나 쉽게 벌어도 되나 싶을 때가 있다.


어찌 되었건 일주일간의 영업과 본사 직원의 자리를 빙빙 돌아 다시 아이들, 이곳이다. 월천 공주의 꿈도 직원 명찰을 목에 걸고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활보하는 것도 한순간의 꿈이었던 것처럼 사라졌지만 머리를 질끈 묶고 운동화를 신고 백팩을 메고 오늘도 압구정으로 향한다.





'딩동' 초인종을 누르면 아이들이 현관 앞에 서서 팔짝팔짝 뛰고 웃으며 반긴다. 아이들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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