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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화동오로라 Nov 01. 2020

압구정, 입주민도 아니면서

오랜 동네 속속들이 알아보기




얼마 전, 큰 언니 부부가 광교로 이사했다. 엘리웨이를 방문했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몇 달 뒤, 이사 날짜가 정해졌고 집들이로 가족들을 초대했다. 엘리웨이는  방문객으로 갔을 때보다 입주민으로 가니 편한 점이 많았다. 주차장도 줄 서지 않고 들어갈 수 있고  비용도 무료이다. 문 하나로 이어져 엘리웨이를 언제든지 집 앞처럼 드나들 있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면 센서가 작동해 엘리베이터가 1층으로 내려온다. 집에 들어서면 다양한 스위치로 조명의 밝기 조정도 가능하고 높은 층수로 호수를 바라보는 전망도 좋다. 집안에서도 처음 보는 기술도 많아서 형부를 따라 집 구경을 하면서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아파트들이 많은데 왜 그렇게 비싸고 불편한 현대아파트에 사는 걸까?"

 "거기는 재건축만 기다리고 있잖아" 


어김없이 '재건축'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동의한다. 서울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부동의 10위권 안에 들고 지금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아파트 값이 재건축이 되면 그야말로 아파트값이 하늘을 뚫을 기세니까.  재건축 이야기 나온 지 몇 년째이고 아직도 언제 재건축이 될지, 며느리도 모르는 상황에 그야말로 몸 테크로 이들은 버티고 있는 것인가?



내가 경험한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재건축만 바라고 몸 테크로 버티는 동네가 아니다. 

지난 편 <가정교육: 정리정돈>에서 다뤘지만  압구정은 오래된 부촌으로 이른바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 등 고위층 주거지로도 알려져 있다. 오래되고 낡은 아파트 단지임에도 불구하고 주거 이전 빈도가 낮고 자녀가 성년이 돼서도 압구정동 거주비율이 높다고 한다*

 압구정은 가족단위로 많이 모여 산다. 채령이는 압구정 00동 할아버지, 00동 외삼촌이라고 하며 선생님은 몇 동에 사냐고 물어온 적이 있었고, 할머니는 앞에 아파트에 살고 이모는 옆에 아파트에 산다는 지형이네 이야기도 들었다. 신현대 아파트에 수업을 왔는데 구현대에서 수업하는 학부모님을 만났다. 알고 보니 '친정이 이곳이다. 시댁이 이곳이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가족이 모여서 사는 아파트, 어릴 때부터 자라왔던 동네가 압구정일 뿐이다.


 배정받은 수업 전화번호를 저장하면 카카오* 통해 이름과 사진 등으로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다.  대부분 아이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있는데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사진 한 장에서 멈춰 섰다. 학부모님의 어릴 때 사진으로 배경은 현대아파트 앞 놀이터였다. 엄마도 자란 압구정 아파트에서 그의 딸도 자라고 있었다.


 나는 종로에 있는 00 초등학교를 다녔다. 지금도 종로에 살고 있다. 남편과는 초등학교 동창이고 시댁은 채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다. 여동생은 남편의 친한 친구이자 나와 초등학교 짝이었던 동창과 결혼을 했다. 우리는 빌라에서 위아래 집으로 살고 있고 동생 시댁도 채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다. 나중에 우리도 아이가 생긴다면 지형이네처럼 "이모랑 이모부 집은 아랫집이고 할머니 집은 저기 옆에 있어요."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나와 동생도 어릴 때부터 자라왔던 동네가 그냥 이곳이었을 뿐이다.

 

서울, 강남 중심에 오래되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동네가 바로 현대 아파트이다. 봄에는 벚꽃구경을 따로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쭉 뻗은 벚꽃길이 군데군데 있고 가을에는 단풍 구경은 다른 데 갈 거 없이 압구정으로 와야지 할 정도로 각 계절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40년의 아파트 나이만큼 나무들도 12층까지  키가 자랐다.   여기저기 새가 둥지도 틀었다. 수업 중에 율이가 친구 집 어디 놀러 갔다가 둥지 안에 새알을 본 적이 있다면서 흥분해서 하는 말을 전해 듣기도 했다. 가을에는 새들이 나무에 여럿 매달려서 열매를 쪼아 먹기도 한다.


 고양이도 자주 본다. 어느 동호수에 가더라도 고양이는 자주 출몰하는데 지하 1층 공간에서 아예 아기 고양이를 낳고 사는 고양이 가족까지 있다. 깜깜한 밤에 갑자기 달려 나오는 고양이에 몇 번씩 놀라긴 하지만 아파트에서는 고양이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가 거의 없다. 상가에서 아파트와 연결된 지름길에는 고양이 집을 마련해주고 주기적으로 고양이 밥까지 챙겨주는 사람까지 있다.


 '나중에 재건축되면 나무와 새와 고양이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재건축 소식을 들을때 마다 생각만 해도 슬퍼진다, 입주민도 아니면서.


압구정은 세월이 주는 감성이 있다.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과 울긋불긋 단풍의 향연, 세월 따라 깎인 돌멩이로 만든 계단, 오래된 계단 손잡이, 울퉁불퉁 보도블록과 작지만 알찬 경비실. 할머니 집에 온 것 같은 신사시장과 심은하가 근무하고 있을 것 같은 우체국, 한석규가 운영할 것 같은 사진관 등이 그것이다. 금강 쇼핑센터는 할머니들의 오랜 쇼핑의 장으로 보이는데 최신식 쇼핑센터보다 어쩐지 나는 이곳이 더 정이 간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했던가, 동네만큼이나 사람들도 따뜻하고 정겹다. 수업시간에 맞춰 급하게 길을 가다가 눈길에 넘어진 적이 있다. 괜찮으냐며 내 옷을 털어주고 일으켜 세워주시는 어른들의 따뜻하 마음도 경험했고 동네 커피숍 4인 자리에 자리 잡고 앉았는데 할머니 무리들이 들어오셔서 내가 선반 자리에 옮겨 앉았다. 고맙다고 귤 두 개를 쥐어주며 마음을 표현해 오시기도 한다.

 수업 때 예쁘게 깎아놓은 과일과 이동하며 간편하게 먹을 수 있게 지퍼팩에 담아준 음료와 간식들,  간단하게 차려준 따끈한 저녁상과 수업 끝나고 차로 태워다 드리겠다는 학부모님들. 공짜로 수업을 해주는 것도 아닌데도 감사한 배려에 몸 둘 바를 모를 때가 많았다.


시대는 점점 발 빠르게 변하고 늘 새로운 것을 내놓는다. 대중들도 거기에 맞춰 신상을 선호한다. 압구정도 신축 아파트만 바라고 재건축을 몸 테크로 버티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강남의 역사와 한국 아파트 역사의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시대를 역행하는 발상 같지만 유럽의 100년 된 아파트 200년 된 아파트처럼 어느 한 편으로 보존하고 관리하는 아름다운 방법은 없는 걸까?


쉬운 마음에 계절마다 사진을 찍고 낮과 밤, 고양이와 새, 공원과 아파트 사진을 찍는다.











ⓒ 매일경제 & mk.co.kr,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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