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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화동오로라 Nov 01. 2020

동생은 청담동, 나는 압구정

 

강남 이야기는 동생을 통해 귀동냥으로 먼저 들었다.


가사 일을 도와주는 이모님과 아이를 봐주는 이모님이 두 세명은 집에 상주해 있다, 아이 방인데도 한강 전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 층에 한 세대만 있는 집도 있다,  연예인도 종종 본다, 엘리베이터에서 신** 배우를 만났는데 향수 냄새가 진하더라, 100평대 고급 빌라를 들어갔는데 아이랑 숨바꼭질하다가 집이 넓어서 길을 잃기도 한다, 교육비를 현금으로 주시는 분들이 많다, 방 안에 또 다른 방이 있었는데 방 전체가 금고여서 현관문처럼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교육비를 주신적이 있다, 명절이나 스승의 날 받아오는 선물들은 유명 로고들이 박힌 가방과 화장품들인데 알고 보니 회사 직원이더라. 

 유명 연예인들의 아들 딸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강남 선생님이 몇 명이 같은 팀으로 있다. 선생님들끼리 만나면 어디 아파트, 혹은 어디 빌라에 유명 연예인 집 아들이나 딸을 가르치는데 집이 좋더라, 넓더라. 연예인 실제로 보니 예쁘더라, 잘 생겼더라 등의 이야기로 눈과 귀가 이만하게 커져서 들었다. (그 외에 더 많은 이야기들을 했지만 내 뇌리에 남는 건 왜 이런 것들 뿐일까;;)


신문방송학과를 전공한 동생은 학과 특성에 맞춰 졸업  마케팅 회사일을 시작했고 3 이상 경력이 있지만 업무, 상사, 광고주 스트레스가 과중하여 주말도 반납하여 업무에 매달리는  힘들어했다가까이서 지켜본 터라 내가 하고 있는 과외수업, 시간 조절이 용이하고 결혼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있는 일로 전향해 보는  어떠냐고 제안했다. 동생은 관심을 가지긴 했지만 회사에서 최대한 버틸 때까지 버텨보겠다 하고 그로부터 1  하던 일을 정리하고 청담동 전담교사가  것이다.


 보통 3,4년 주기로 슬럼프가 온다던데 수업 경력 7년, 내게도 일을 그만두려는 찰나 동생이 지역을 바꿔서 강남에서 수업해보는게 어떠냐며 내게 다시 일을 권했다. 나는 그러자 했다.





   얼마 뒤 수원에서 제안받은 조건으로 맞춰주겠다는 본사 팀장님의 연락을 받았다. 용산과 이촌동 지역이 주어졌고 시간표가 다 짜여 있어 주소를 검색해 동선만 맞추면 되는 상황. 지하철 무슨 역 근처고 버스 노선도 많으니 지하철과 버스를 잘 활용해야겠다며 꼼꼼히 동선을 짜고 있는데 최신식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즐비해있는 용산에 괜한 기대가 되었다. 방문수업의 묘미 중 하나는 다양한 아파트와 주거공간을 엿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생각보다 수업이 많긴 했지만 새로운 지역과 아이들을 만나는 기대와 설렘 때문인지 신입교사가 된 기분으로 즐거웠다.


그. 런. 데.




시간표를 받은 지 며칠 되지 않아 팀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압구정 선생님이 갑자기 그만두게 되어 용산이 아니라 압구정을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해보겠다며 전화는 끊었지만 과목과 진도, 동선 체크도 다 해두었는데 갑작스러운 전화에 나는 기분까지 나빠졌다. 처음 말했던 대로 용산을 들어가겠다며 정중하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곧바로 팀장님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내 지역은 결국 압구정이 되었다. 큰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알겠다고는 했지만 그날 저녁, 남자 친구에게 팀장이 나한테 이랬다가 저랬다며 긴긴 하소연을 이었다. ‘용산이 얼마나 좋은 주상복합이 많고 다 최신식에다가 교통도 좋은데 나보고 압구정으로 가래, 옛날 옛날 아파트으으으!!’

 남자 친구는 거리도 가까워졌고 집에서 교통은 더 편하다며 긍정적이라며 나를 달랬다. 아파트는 낡아도 부자동네라는 말도 덧붙였지만 나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한번 배정되면 몇 년씩 수업을 해야 하는데 그냥 그만둔다고 할까, 결혼한다고 할까, 임신했다고... 하면 거짓말인 줄 다 알겠지.


그렇게 나는 압구정 교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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