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도 없이 빗속을 절뚝거리며 걷는 노숙자 분이 눈에 띄었다. 남편은 다가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지갑을 열어 지폐 몇 장을 건넨다. "따뜻하게 식사 한 끼 하시라고, 추운데 어디라도 들어가 계시면 좋겠다고" 노숙자분은 안 받겠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남편이 손에 쥐어주고 돌아섰다.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우리는 이내 마음이 놓여 발걸음을 편히 돌렸다.
버스정류장에서 도착했다. 또 다른 노숙자 분을 만났고 이러저러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이 이번엔 내 지갑(?)을 달라고 한다. 내 지갑속 지폐를 모두 노숙자분에게 건넸다. 어쩌다 보니 우리 둘 다 빈 지갑 신세;; 버스정류장 노숙자분은 여자분이셨고 우리는 타야 할 버스 서너 대를 보내고 나서야 그제야 본인의 이야기를 끝내셨다. 타야할 버스가 왔고 이만 가보겠다고 인사를 드렸다. 우리는 십 여분만에 버스를 탔고 두명이서 앉는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잠깐이지만 오늘 만난 분들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뭐라도 줄 수 있어 기쁘고 감사하다"며 서로 쳐다보며 바보처럼 웃었다. 하루에 한 분 만날까 말까 하는데 하루에 두 명이나 연이어 노숙자 분들을 만나다니. 마침 일요일이고 오늘이 주일이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오늘 만난 분들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지나치지 않고 뭐라도 주고 싶어 하는 남편의 마음, 파출소도 드나들고 경찰차도 여러 번 타게 되었던, 연애초부터 시작된 이상한 데이트가 조금 귀찮고 불만이었는데 요즘엔 이런 남편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