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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화동오로라 Jul 20. 2024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다



자전거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할아버지가 타시던 크고 낡은 자전거이다. 


 할아버지는 빨간 안장을 철물점에서 사 오셔서 네 다섯살 어린 나를 앉혀 벨트를 채워 유치원을 데려다주시기도 했고 슈퍼에 물건을 같이 사러 가기도 하셨다.

 예닐곱살 무렵에는 할아버지 자전거를 나는 놀이기구처럼 탔다. 마당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에 올라가 안장에 앉아 손잡이를 잡고 바퀴로 발만 굴리며 타고 놀았다. 잠금장치로 세워져 있어 움직이지는 않고 바퀴만 굴러가는데도 빠르게 굴렸다 느리게 굴렸다하며 놀았다.

 아홉살 때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집 근처 동네로 끌고 나가기 시작했다. 오른쪽 왼쪽 당연히 넘어졌고 몇 바퀴 굴러가더니 논두렁에도 빠진 적도 있다.  이쯤 되면 포기할 법도 한데 나는 그 큰 자전거를 매일 끌고 나갔다.  

 뒤에서 잡아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계속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직진 구간에 넘어지지 않게 되었다가 우회전 좌회전을 하다가 넘어졌고, 우회전 좌회전에서 넘어지지 않게 되었다가 유턴을 하면서 또 넘어졌다. 그러다가 얼마 되지 않아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올 수 있게 되었다.


  학창 시절과 성인이 되었을 때 자전거를 탈 기회가 없었고 어쩌다가 친구들과 공원에 놀러 갔다가 자전거를 빌려 타는 것 정도만 있었다. 몇년 전부터 동네에 따릉이가 설치되어 그때부터 자전거를 자주 이용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니 어릴 때 자전거를 타게 되었을 때의 설렘과 즐거움에 두세 시간씩 서울 여기저기를 정처 없이 다니기도 했다. 

 요즘 전기 자전거 대여도 많이 상용화되었다. 호기심에 한번 올라탔는데 두 다리에 날개가 달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페달을 조그만 굴려도 이만큼씩 앞으로 나가게 된다. 평지는 물론, 오르막 길이 힘이 하나도 들지 않고 더운 여름에 땀을 식히기에도 좋다. 주말에 많은 인파와 교통체증에 버스도 막힐 때 전기자전거를 자주 이용한다. 


...... 그러다 사고가 났다.




 

 자전거를 타다가 아는 친구를 만나 반갑다고 잠깐 오른손을 들고 인사하다가 넘어졌다. 그냥 넘어진게 아니라 맨바닥에 완전 내동댕이. 한 손을 놓은 것과 동시에 자전거 동력에 내 몸과 자전거가 갑자기 앞으로 혹 나갔다. 중심을 잃었고 동력 그대로 바닥에 내가 내동댕이 쳐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얼굴이 바닥에 박혀 있었다. 나를 발견한 친구는 막 달려와서 나를 일으켜 세웠고 나보다 더 놀란 것 같았다. 숨소리도 거칠었고 거의 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넘어졌구나 인식했고 이어서 오른쪽 눈 위로 피가 뚝뚝 떨어졌고 눈 주변이 아프고 따가웠다. 바닥에 얼굴로 떨어지면서 안경이 깨지면서 눈 위에 길게 상처를 남겼다. 친구는 응급실을 가자고 했고 근처 성형외과를 가서 꿰매야 한다며 나보다 더 유난을 떨었다. 일단 가까운 의원으로 가서 상처만 치료하자며 내가 오히려 친구를 달랬다.


 눈 위에 길게 찢어진 상처, 오른 쪽 팔꿈치와 손목에 깊이 패인 상처. 왼쪽 무릎에 넓게 퍼진 멍. 

 의사는 나를 보더니 어떻게 다친 거냐고 물었고 나는 자전거를 타다가 다친 거라고 했다.  어린아이들이 많이 다치고 오는 경우는 많은데 성인이 이렇게 많이 다쳐서 오는 경우는 드물다는 의사 말에 나는 괜히 부끄러워졌다.  할아버지 자전거를 타며 넘어지고 논두렁에 빠질 때도 이렇게까지 다치진 않았던 것 같다. 일반 자전거를 타고서 한 손에 커피까지 들고 마실정도의 자전거 실력인데 아주 잠깐 손을 놓친 게 이렇게까지 크게 다치게 되는구나 깨달아 나는 안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온몸이 반창고로 만신창이가 된 나를 보고 남편은 속상해했고 또 조금 나를 혼냈다.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라며 안아주었는데 나는 조금 울 것만 같았다. 남편은 매일밤 소독하고 약을 발라 반창고를 붙여주었다. 여름이라 더운데 편하게 씻지도 못하고 깊은 상처에 반창고를 떼어낼 때와 소독할 때의 고통에 나는 매일 밤 아파했다.  2주가 지나 상처가 많이 아물어 고통의 시간이 지났지만 흉이 생길 수 있다는 말에 햇빛에 노출되지 않게 주의하고 6개월 뒤에 레이저 치료가 가능하다고 해서 잘 관리해주고 있다.  몸 여기저기 아직도 반창고 신세이다. 


 넘어져서 다친 게 창피해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는데 엄마 생각이 났다. 넘어졌다고 다쳤다고 아프다고 어린아이처럼 막 말하고 싶었다. 괜히 걱정시킬 거 같아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지 생각이 들다가 엄마가 있을 때 이런 것도 해보는 거지 뭐! 나중에 아주 나중에 엄마한테 말하고 싶어도 엄마가 없고, 전화하고 싶어도 전화받을 엄마가 없을 그때는 너무 지금이 후회될 거 같아. 할 수 있을 때 다해야지!  평소에 전화도 잘 안 하는 나는 바로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나 넘어져서 다쳤어어어 엉엉.. 너무 아파.... 피도 여기저기 막 났어. 의사 선생님이 흉도 진대."

 엄마는 생각했던 것만큼 엄청 놀라거나 하시진 않았다. 그래도 조심히 다니라며 당부했고 상처 치료도 잘하라고 하셨다. 간단히 안부도 묻고 일상의 대화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엄마에게 여러 차례 급하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나 00야, 하며 내 실명을 거론하며 갑자기 큰돈이 필요하다고 카드 앞뒤면과 비밀번호, 주민등록증을 요구했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다쳐서 치료가 필요하구나 생각해서 의심도 없이 시키는 대로 다 알려주었다고 했다. 내 번호와 다른 전화번호였는데 핸드폰을 새로 개통했다나 뭐라나.  다행히 1원의 피해도 없이 잘 지내갔지만 다쳤다고 아프다고 전화하지 말걸 후회했던 순간이고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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