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MAR18 Monday
이제 반이 남지 않았다. 오늘은 최고로 오래 자고 일어났는데, 그래도 떠나는 캐럴에게 인사를 하려고 뒤척이다 일어나 도쿄 바나나 초콜릿 2개를 선물하고 작별했다. 내가 첫 한국인 친구라고 했는데, 나 역시 첫 독일인 친구이자 내가 만난 독일인 가운데 가장 상큼 발랄한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독일인 대만인 캐나다인에 대해 굉장히 호라서 이번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인사를 전한다.
호스텔은 다 좋은데, 청소 시간이 있어서 아니 그나마 이것도 아니라면 난 오후 4시까지 쓰러져 잤을 것도 같다. 겨우 일어나 배를 채우려고 숙소 앞 음식점에 갔는데, 3 젓가락 먹고 나왔다. 완전 실패다. 모라고 쓰여있는지도 모르면서 자신 있게 골랐는데 채소에서도 그 냄새가 고스란히 배어 나와 맨밥이라도 먹으려다 참고 나왔다. 슬프다. 숙소 근처를 자세히 걸어본 적이 없어 오늘은 스타벅스까지 가는 길 돌아 돌아 골목골목 어슬렁거렸다. 세상에 이 좁은 강에 유람선도 다니고, 벚꽃도 만개해서 점심시간 직장인들이나 나 같은 관광객들이나 열심히 구경 중이다. 유명지가 아니어도 도심 곳곳이 벚꽃이 피어 있어 참 좋다. 그리고 도쿄 날씨는 급 여름이 온 것 같다. 초여름 정도이지만, 불과 저번 주 수요일 목요일만 해도 찬바람이 그렇게 가득했는데, 우리나라만 이런 게 아니라 도쿄도 봄을 건너뛰는 건가 싶기도 하다.
내가 정말 어깨가 아작 날라고 이 무거운 여행책을 들고 다니는 건가 왜 그러는 건가 어차피 펴놓고 보고 나서도 까먹고 그러면서.. 오늘 밤에야 필요한 부분만 핸드폰으로 찍었는데, 이 간단한 생각을 왜 이제야 한 걸까... 싶다. 고생스럽다 온종일 몸이. 스타벅스에서 시음으로 먹었던 프라푸치노가 맛나서 주문하려 했더니 이 동네 직장인들이 다 마셨는지, 벌써 솔드아웃이라길래 그냥 추천 음료 주문해서 적당히 시간 좀 보내다 오늘의 동네 롯폰기로 향했다. 어제 만난 멕시코 친구가 너무 대단하다고 강력추천을 해주었는데, 시부야 긴자 롯폰기 까지 아직 특별한 차이는 모르겠다. 우선은 미드타운으로 나와서 벚꽃 구경을 했다. 가족단위 특히 영유아 어머님들이 많이 나와있는데, 여기저기 귀염둥이들이 뛰어다녀서 즐겁다. 커플들도 가득하고 상냥한 일본인 커플에게 사진을 부탁하고 , 오늘은 4 커플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벚꽃 한정판 모엣 샹동 프로모션 중인지 온통 핑크 핑크 한 세상이다. 지하철역에서 산 녹차 슈 4개를 삼키고야 일어났다.
롯폰기에는 2개의 츠타야가 있다. 우선 미드타운의 아주 작은 츠타야를 들렀는데, 간이 서점의 느낌이다. 자꾸 부록 때문에 일본 잡지를 사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이 책을 어떻게 할 건지 모르겠어서 꾹 참았다. 롯폰기 힐스의 명성을 확인하려 가는 길에, 음료를 무료 증정해주길래 하나 받고 우선은 모리 타운에 가서 다시 벚꽃구경을 했다. 지금이 절정인 것 같다. 이번 주말이 되면 거의 흩날릴 것도 같고, 그런데 또 햇볕을 받는 양에 따라 같은 위치여도 덜 핀 나무들도 있고 그렇다. 벼르던 하브스를 가서 음료까지 사 먹기엔 아까워서 한 조각 포장해서 나왔는데 유명세만큼 맛은 정말 진하고 좋았다. 다만 거의 다 먹을 때쯤이야 더 넘기기 힘듦 달달함 때문에 아주 조금 남겼다. 나 이제 일본에서 먹어 보고 싶은 거 다 먹은 것 같다. 특별히 리스트도 없었지만... 츠타야로 가는 길에도 벚꽃길이 있는데, 사람들이 다 어떻게 알고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있을까. 나처럼 고개를 돌려 우연히 벚꽃나무가 보이길래 이왕이면 골목으로 들어가 보자 이런 심리였을까.. 예전에 사둔 아날로그 어플 도쿄 편을 이제야 제대로 사용해본다. 슬슬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츠타야 롯폰기는 2개의 층으로 되어있는데, 2층에 창가를 향하는 좌석이 압권이다. 운 좋게도 마침 일어나시는 분이 있어 김수영 작가의 책을 마저 읽기 시작했다. 그래도 띄엄띄엄 자리 배치가 되어 있어 오늘은 그나마 찔끔 눈물 흘렸는데, 긴자 때만큼 울어도 괜찮은 장소라 여겨진다. 다이칸야마 롯폰기 긴자 츠타야나는 정말 다시 가고 싶은 곳들이다. 아까 작은 츠타야에서도 본 책인데, 츠타야에서 밀고 있는 아니 이미 베스트셀러인가는 잘 모르겠지만 한편에 잔뜩 홍보되어 있다. 도쿄 여행 맛집 탐방인 듯한데, 반은 일어로 반은 영어로 되어 있어서 맛집 여행하시는 분이라면 참 괜찮게 구성되어 있었다. 해가 사라지고 나서야 배도 고프고 에비스로 가기 위해 다시 롯폰기 힐즈로 향했다. 정말 쉑쉑은 안 갈라고 했는데 기운이 없어서, 역시 디저트는 헛배만 부르다. 아니 본식을 먹고 디저트를 먹어야 완벽한 룰을 디저트로만 종일 채워됬더니 난리가 났다. 벚꽃 쉑이 궁금해서 슈룸 버거랑 주문해서 오랜만에 먹었는데 그래도 슈룸 버거는 기본은 하니까 이 단짠단짠 사쿠라 쉐이크는 몹시도 달아 짠맛과 극강의 상쇄 중이다. 너무 달다...
에비스의 가든플레이스 야경이 이쁘다고 해서 갔지만 야경만이 있었다... 그나마 출구를 잘 못 찾아서 길이 아닌 곳 같은 데서 조금 헤맸는데 이 부분을 지나 나온 상점들이 이뻐서 오히려 에비수까지 온 이유라도 되어주었다. 겨울에 조명등이 함께했을 때만 그런 풍경이 나오나 보다. 암튼 지금은 갈 이유가 1도 없다.
억울하니 근처에서 모라도 건질라고 나가 메구로로 향했다. 사람이 정말 다들 벚꽃 만개한 거 알고 월요일 밤인데 그득그득 터질 것 같았다. 저번에 왔을 때 아직 만개도 안 했고 낮에 보는 풍경을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고 여겼는데 이 곳은 밤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등이 한 몫하고 시부야 쪽 벚꽃에는 다양한 색의 조명을 입혀서 훨씬 아름답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벚꽃도 너무 아름다운 곳이 많아서, 저번에는 좀 많이 아쉽다고 여겼는데 확실히 좀 더 풍성해지고 밤이 되니까 충분히 올만한 곳이라고 여겨졌다. 강아래로 꽃송이가 무거워져서 그림처럼 내려오는 가지들과 강물에 반사되는 빛들이 나가 메구로 가 1위 명소로 자리 잡은 이유인가 보다. 아까 못 마신 벚꽃 샹동 한 잔에 담긴 딸기 4알 800엔인데, 기분으로 한 잔 사 마셨다. 술과 안주가 한꺼번에 해결되니 약간 웃기면서 나름 만족스럽다. 여행책의 무게만 아니었으면 훨씬 가뿐하게 구경했을 텐데, 그래도 나가 메구로는 지금이 정말 딱 와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흩날리는 풍경도 굉장히 궁금한데, 마지막 날에 다시 한번 올까 고민 중이다.
: 도쿄 벚꽃 현재 절정 중 / 날씨 굉장히 좋음, 아마도 곧 여름 올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