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MAR18 TUE
일요일 피크닉을 갔던 숙소 근처 벚꽃나무에 잎이 나기 시작했다. 햇볕이 좋은 곳이라 빨리 만개하고 벌써 이별하려나 아쉽다. 동네 유치원 아가들이 소풍을 나와서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그중 한 아가를 수레에 먼저 태우려 하니 당연히 싫어서 떼를 쓰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물론 선생님은 힘드시겠지만, 일본 유치원생들은 나이별로 모자 색을 다르게 착용하는 듯한데, 우리나라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색색이 모자들이 벚꽃나무 아래에서 열심히 놀고 있는 모습들이 참 사랑스러웠다. 우에노 공원에 다시 왔다. 목적지를 가기 위해 지나는 이유였지만, 이왕이면 공원 안으로 들어와 그 사이 더 활짝 핀 꽃구경도 하고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도 만끽 중이다. 회사에서 가족단위 연인끼리 여행객들 우에노 공원은 평일 오전이 무색하게 절찬리 상영 중이다. 도쿄예술대를 지나는 길은 한가로워 벚꽃 가로수에서 잎이 살랑살랑 내려오고 있다. 어쩌면 내가 가장 만나고 싶던 도쿄 아니 일본의 모습이었는지 모르겠다. 카야바를 가는 골목의 모습이 너무 좋아 아주 천천히 거닐었다. 그 동네 모습의 딱 들어맞는 커피집이 보이는데, 내가 찾는 곳이었고 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 뒤로 서 창 안의 풍경을 들여다본다. 40분가량 기다렸나 싶다. 오늘도 도쿄 날씨는 맑음이라 햇볕은 조금 뜨겁지만 전혀 지치지 않았다. 오래된 시간을 고스란히 담은 테이블에서 색연필로 그려진 듯한 메뉴를 펼치고 이미 정해진 메뉴를 주문한다. 현재 도쿄 넘버 1인 푸글렌을 산미가 강해서 찾지 않았는데, 카야바가 푸글렌의 커피를 제공한다. 한 입 마셨는데 순간 찌릿함이 느껴진다. 시럽 연유 다 넣고서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따뜻한 타마고 샌드는 처음 먹어보는데 보슬보슬하고 푹신한 식감이 너무 좋았다. 부드러운 빵 역시 충분했다. 2층 다다미방에 앉아서 조금 더 이른 시간에 먹어본다면 어떤 기분 일까도 궁금했지만 지금도 충분히 좋아서 배 든든히 채우고 다시 기다리던 풍경으로 걸어 나왔다. 원래의 계획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걸어보기로 했다. 일본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공원묘지였는데, 벚꽃이 묘지 안에도 활짝 이 피어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금은 어색하다고도 생각하다가 차분하게 벚꽃도 보고 적당한 그늘에서 조금 앉아 있었더니 어느 때보다 마음이 정화됨을 느낀다. 그 옆에 절이 있어 그 안의 특별한 모습을 한 벚꽃나무를 조금 더 살피다가 닛포리역까지 와버렸다. 처음 도쿄에 디딘 닛포리역을 밖에서 이렇게 처음 보는데, 일주일이 되어서 인지 기분도 한 바퀴를 돌아서 다시 처음으로 온 것 같은 생각을 해본다. 고양이 마을로 가기 위해 걷는 길 역시 소박하며 정취 있는 모습이었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꼭 펼쳐질 것 같은 동네라 묘한 설렘도 생겼다. 그렇게 걸어 시장으로 가니 일주일간 전혀 보지 못한 특색 있는 상점들에 하나하나 꼼꼼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이 생선가게는 분명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느라 자신의 삶을 다한 가수의 아버지의 가게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점을 봐주는 곳도 우리나라에 핫한 가맥의 모습도 이렇게 상영 중이구나. 정말 반나절 너무 추천해주고 싶은 코스다.
우에노 파크 - 카야바 커피 - 야나카령원 - 고양이 마을
왠지 꼭 코스인 것 같아 아사쿠사에 와 있었다. 생략하고 싶었는데 정신을 닛뽀리에 두고 왔더니 도무지 그 거리를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빨리 감기 해서, 스미다 공원으로 이동했다. 스카이트리도 겉에서나마 제대로 보고 싶어서 다리도 건너고 도로도 건너고 어느새 도착해 편의점에서 사 온 이런저런 군것질로 기운을 달래 본다. 꼭 전망대에 올라가란 법이 있나 그냥 테라스에서 가부좌하고 있지만, 올라가 볼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오늘 도쿄타워 전망대가 좀 많이 아쉽다. 도쿄역으로 넘어와서 이때부터는 너무 헤매서 그냥 도쿄역은 다시 가고 싶지 않다. 츠케멘 좀 먹겠다고 그렇게 돌고 돌다가 더는 안 되겠어서 그래도 소바를 먹을 수 있었고 원래의 도쿄역을 좀 보겠다고 그 출구를 못 찾아서... 좀 물어보고 싶었는데 다들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 발바닥에선 지금도 파이어중.. 가까스로 구 도쿄역사의 모습을 보고 키테가든에서 짙어지는 하늘을 보며 도쿄역에서 털털 털린 영혼 수습. 오늘은 여행책도 두고 나왔는데 시장에서 산 바나나 한 뭉치와 나 오늘 고삐 풀려서 군것질 이것저것 사서 또 두 손 가득 봉지들로 인해 어깨는 많이 지침. 봉지 쇼퍼는 내일 돈키호테와 이토야를 끝으로 그만해야겠다.
도쿄 하면 도쿄타워, 탑덱은 비싸서 그냥 메인 덱으로 가서 예상한 만큼의 야경을 보았다. 기대를 안 했는데도 조금 아쉽다. 그렇다고 탑덱 비용을 가기엔 좀 많이 아까워서, 그래도 도쿄타워 와본 게 어디냐며 만족한다. 내일은 도쿄 청사 무료관람 가서 도쿄타워의 모습을 구경해야겠다. 도쿄타워는 이렇게 올려다보는 게 근사한 것 같다. 투샷도 잡아보고 달도 담기고, 걸어 내려가면서 다시 힐끗 보면서 괜히 뿌듯한 밤이다.
역 근처에 작은 츠타야가 있어, 아이스 숏 라테 한 잔 하며 김수영 작가의 책을 다 읽었다. 서울 가서 다시 정리하며 더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하루에 집중해서 읽어도 참 좋은 이야기들이다. 사실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게 그렇게 시간이 충만해도 할 수가 없을뿐더러, 시간이 있어도 무엇에 쫓기는지 다른 잡념들에 항상 밀려버리고 만다. 여행에 와서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좋은 책에 온전하게 집중할 수 있어서 그 시간이 참 고맙다.
여행을 올 상황도 아니었고, 와서도 어찌어찌해서 괜찮은 컨디션으로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한 밤이다. 조금 더 감정에 솔직해서 마음에 비치는 것들에 코끝 찡한 것도 좋고, 그날의 온도를 고스란히 마감하는 것도 내가 기대한 진짜 이유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