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함을 견디는 힘
때론 진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다. 차가운 진실이 날카로운 칼처럼 우리를 찌른다면, 알 수 없는 불안감은 끝이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처럼 우리를 질식시킨다.
진실은 아무리 잔혹해도 드러나는 순간 형태를 갖는다. 형태가 생기면 우리는 대응할 수 있다. 체념하든, 분노하든, 수습하든. 하지만 알 수 없는 상태는 그 어떤 행동도 허락하지 않는다. 실체가 없기에 무한히 증폭될 뿐이다. 인간은 알 수 없는 빈 공간을 그냥 두지 못하고, 그곳을 최악의 상상으로 채우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불확실성에 대한 불내성(Intolerance of Uncertainty)’**이라고 부른다. 정보의 공백이 생기면 우리는 그것을 ‘가능성’이 아니라 ‘위협’으로 인식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르는 것’을 견디느니, 차라리 ‘나쁜 확신’을 갖는 쪽을 택하곤 한다. 의심하고, 추궁하고, 최악을 가정하며 스스로를 갉아먹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대부분은 불확실함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일의 날씨, 타인의 마음, 나의 미래. 이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흐릿하다.
우리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답을 빨리 찾아내는 능력이 아니라 답이 없는 상태를 견디는 근력을 기르는 일일지도 모른다. 영국의 시인 존 키츠는 이를 **‘소극적 수용 능력(Negative Capability)’**이라 불렀다. 불확실하고, 신비롭고, 의구심이 드는 상태 속에 머물면서도, 성급하게 사실이나 이유를 따져 묻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를 괴롭히는 건 상황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을 완벽히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일지 모른다. 막막함은 영원하지 않고, 우리는 생각보다 이 모호함을 잘 건너갈 수 있는 존재라고 믿는 것. 그것이야말로 알 수 없는 불안감이라는 안개 속에서 우리가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