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는 모든 대상의 총체성이고, 비극은 한 행동의 일체성이다
서사와 비극, 두 개념은 언뜻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두 가지 핵심적인 방식이다. 우리 인생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무한한 가능성으로 서사의 중심에 놓인다. 한편 응축된 감정과 운명의 무게, 선택의 순간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비극 속에 놓이기도 한다.
서사는 모든 인물, 사건, 사물, 배경이 연결된 세계의 총체적 직조물이며, 시간과 인과로 확장되는 구조를 가진다. 존재론적으로 다양성을 다루는 동시에 신의 관점에서 세계를 서술한다.
비극은 서사의 총체성 속에서 단 하나의 행동—행위, 결단, 충돌—에 모든 의미가 응축되는 형태이며, 한 순간으로 수렴하는 운명이다. 의지의 단일성을 다루는 비극은 인간의 시점이며, 불가피한 선택의 서술이다.
다시 말해,
서사는 세계를 구성하고, 비극은 세계를 관통한다.
서사는 삶의 복수성을, 비극은 존재의 단수성을 드러낸다.
서사는 시간을 품고, 비극은 시간을 단절 시킨다.
신은 서사를 쓰고, 인간은 비극을 산다.
비극적 행동(일체성)이 없었다면 서사(총체성)는 그저 무의미한 나열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총체적인 서사라는 맥락이 없다면 비극적 행동은 그저 ‘하나의 사건’일 뿐, ‘비극’이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안나 카레니나』 전체는 하나의 서사지만, 안나가 기차로 향하는 마지막 순간의 행동은 순수한 비극이다. 그 순간은 수백 페이지에 걸친 총체적 맥락 위에서만 비극으로 성립한다.
결국 우리는 ’총체적인 세계(서사)’를 살아가면서도, ’하나의 일체적인 행동(비극)’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