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빠순이의 역학관계
빠순이의 역학관계
준이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유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말을 안해도 통하는 사이인 듯, 유진이는 말했다.
“어쩐 일이긴? 근처였어 마침.”
사실 유진이는 근처가 아니었어도 와도 되는 사람이었다.
“나 로제 떡볶이 좋아하는 거 알고 이거 시킨 거야?”
“어.. 뭐.”
“고마워. 준아. 하영이도 안녕.”
벙쪄있던 나는 유진이가 들어온 지 5분 만에 인사를 했다.
“어어.. 안녕.”
팀플 할 때도 느꼈었지만 유진이는 정말 말을 잘했다.
유진이는 나랑 친하지 않아서인지 유진이도 아는 나의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 이야기를 꺼냈다.
그 친구가 이번에 철강회사에 취업했다면서 준이에게 연결해주겠다고 말을 하기도 했고,
둘이서 내 얘기를 했다면서 내가 덕질을 꾸준히 한다고,
또, 나처럼 살을 많이 뺀 친구는 못봤다는 얘기를 둘이서 했었다고 말했다.
곰살궂은 얼굴로 유진이는 다이어트 비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내 눈에는 살집이 거의 없는 유진이었기에 거절의 미소로 화답했다.
하지만 유진이는 혼자만 좋은 걸 알면 안된다는 둥, 자기 요즘 살쪘다는 둥의 말들로 나를 어느새 구워삶았고,
아침 공복 운동, 따뜻한 물 한 잔, 가끔 먹었던 효소. 비법 아닌 비법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그때 준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덕인지 ‘그 당시 최애 허리 사이즈가 25’라는 비법을 말하려던 순간 가까스로 입술이 오므라들었다.
최고의 충격요법이자 다이어트 자극제였지만 준이의 눈길에 입은 대신 멎어버리길 택했다.
이상하게 입맛이 뚝 떨어진 내 앞에서 로제 떡볶이는 유진이의 몫이 되었다.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던 유진이는 어느새 당면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준아. 나도 빠순이나 할까?”
“... 무슨 빠순이.” 준이의 눈길은 한갓진 곳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왜 저번에 얘기했던 애 있잖아. 생각보다 빠순이가 좋은가 보더라고. 돈 좀 썼다고 역조공도 받고,
좋다고 해주고. 고맙다고 해주고.”
“고마운가 보지.”
“뭐 고맙긴 할 텐데. 며칠 전에 아이돌 인터뷰 봤거든. 사생팬은 좀 소름 끼친대.
사생이 어떻게 사생이 되는 줄 알아?
내가 이 아이돌을 좋아한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망상을 하고 자꾸만 더 바란다고 하더라.
아무런 생각 없이 한 행동들에 혼자 일일이 의미 부여하고.
만약에 아이돌이 선물더미에서 어떤 지갑이 그냥 예뻐서 꺼내 들면 그걸 선물한 팬은 자기가 선택받았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지갑이 아니라 자기가.
드디어 자기를 알아보는 거라고.
그때부터 자기는 다른 팬들과 같은 그냥 팬이 아니라 뭔가 더 깊은 관계라고 착각하고,
그걸 과시하고 싶어 한대.
그런 걸로 자기들끼리 경쟁도 하나 봐.
그게 어떻게 사랑이야.”
“다 그런 건 아니겠지.”
“너도 저번에 그랬잖아. 팬들이 팬서비스 바라는 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지 않냐고.
대가를 바라고 주는 게 어떻게 사랑이냐고.
넌 어떻게 생각해. 하영아?”
“... 나는 잘 모르겠어.”
“너만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좀 말해줘. 준이가 잘 모르는 것 같아 하영아.”
이상하게 기분이 묘했다.
특히 줄곧 준이한테 얘기하면서도 나를 바라봤던 유진이와,
이제는 그 누구도 바라보지 않는 준이 사이에서 내 동공은 떨어질 길밖에 없었다.
“얘들아. 나 내일 AI면접 있어서 좀 가볼게.”
혼자 있던 것 마냥 누구도 잡지 않았고, 다만 떡볶이 냄새만 깊게 배었을 뿐이었다.
“걔랑 그렇게 친하게 지내야 해? 빠순이랑 누가 그렇게 친하게 지내.”
“그런 얘기할 거면 헤어지자.”
복도에서 소리가 웅웅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