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집 나가면 개고생 (1) - 국제기구 무급 인턴의 독립
왜 다 1유로, 2유로인데 합치니깐 50유로야?
- 우유 1L - 0.99 유로
- 후추 - 1 유로
- 베이컨 - 1.99 유로
- 바나나 - 1 유로
- 사과 - 1.59 유로
...
총합: 50.52 유로
분명 내가 집은 건 다 1유로, 2유로 짜리였다. 하지만 출력된 영수증은 도합 50 유로라고 했다. 믿을 수 없었다. 영수증에 내가 사지 않은 물품이 잘못 들어가 있지 않은지 다시 확인했지만 영수증은 꽤나 정확했다. 사치를 부린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에 나는 50유로(한화 6만 5천 원)를 썼고, 이는 내 한 달 모든 예산의 15%를 초과했음을 뜻했다. 차라리 사치를 부렸으면 덜 억울할 것 같았다. 장바구니 속 부드러운 갑 티슈, 물티슈의 자리는 더 이상 없었다.
서울과 함께하는 나는 꽤나 오만방자했다. 대학교 입학 후 모든 용돈은 알아서 벌었고, 가끔 부모님께 선물을 해드리기도 했다. 이 정도를 웬만한 독립이라 일컬었다. 웬만한 독립은 나로 하여금 떳떳하고 주체적인, 꽤나 진정한 성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했다. 바르셀로나와 파리에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입버릇이었던 "손 벌리지 않을 거예요."라는 말을 다시 남기고 비행기로 훌훌 떠났다. 하지만 그때 그 뒷모습은 딱 눈 감은 채 엉덩이를 쭉 빼놓고 있으면서 자기가 성공적으로 술래를 따돌린 줄 아는, 영락없이 어린아이였다. 60만 원으로 독립을 했다기엔, 너무 예뻤고 깨끗했으며 여유로웠다.
OECD 인턴 공식 월급은 무급이다. 하지만 OECD에서는 생활비 명목으로 709유로 정도를 하사해준다. 여기서 709유로는 꽤나 양가적인 숫자다. 환율을 좋게 쳐줘도 90만 원밖에 안된다.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90만 원이나 받는 것에 감사히 여겨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세계 곳곳 얼굴도 나이도 모를 수많은 지원자들은 돈을 내고서라도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어 하고,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르면 이 0원이라는 숫자는 옳고도 옳았다. 게다가 생활비를 주는 국제기구는 몇 곳 없었고, 아예 무급인 인턴이 국제기구 앞에서 텐트를 치고 자기도 했다는 뉴스를 들으면 그쪽이 더 고달프구나했다. 하지만 배불러야 할 OECD 인턴들은 파리에서 가끔 배가 고팠고, "국제기구 인턴십이 무급인 것이 과연 국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지"와 같은 시시콜콜한 농담을 대신 따먹곤 했다.
709 = 430 + 75. 2 + 10.99 + X 일 때 X의 값을 구하시오.
정답: X = 192.81
1) 430
몇몇의 간단한 셈을 거쳐 파리 시내에서는 살지 못한다는 답이 나왔다. 일찌감치 파리 시내에서 살기를 포기하고서는, 조금 더 넓은 4평의 방에 살기로 택했다. 파리 외곽의 한 베드타운의 주방과 욕실은 공용인 셰어하우스. 지하철 종점에 있으며, 430유로로 예산을 맞출 수 있음에 감사했다. 1. 단기 거주 2. 프랑스인 보증인이 없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그 집은 꽤나 괜찮다고 생각했다.
2) 75.2
OECD는 치안이 좋은 부촌에 위치했다. 또 베드타운과 부촌은 당연히 멀리 떨어져 있기 마련이었다. 베드타운의 베드가 Bad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쨌든 베드타운의 의미는 한 노선의 종점에서 출발하여 중간쯤에서 환승한 뒤, 다른 노선의 종점에 내린다는 말이었다. 그곳에 닿기 위해서는 왕복 2시간과 월 교통권 75.2유로가 필요했다. 집값에 사실상 75.2 유로가 더 붙는 셈이었지만 그렇게 해도 500유로로 파리에서는 창문 있는 4평짜리 집을 구하기란 꽤나 힘든 일이었다. 창문이 위에 달린 것과 옆에 달린 것의 차이는 잘 모를지라도.
3) 10.99
독립하는 순간 숨 쉬듯 쓰는 통신비는 당연히 고정비였으며, 프랑스 통신비가 저렴한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게다가 단 10.99 유로로, 4평 방 안에는 밥 먹을 때의 적적함이 조금 가실 수 있으니깐.
X = 192. 81
그렇게 나온 X가 바로 내가 쓸 수 있는 생활비였다. 하지만 유럽이니 가끔은 여행도 가줘야 덜 억울할 것 같았다. 여행비를 제외하고 X는 점차 작아져 갔다. 부드러운 티슈를 넣지 않아도 자질구레한 세간살이들이 쌓여 50유로가 되었다. 외식 평균 가격은 최소 15유로를 잡아야 했고, 허용된 외식은 최대 주 1회였다. 매일 도시락을 싸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랐지만, 매일 조금씩 제철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다는 꿈같은 생각이었다.
"아침 느지막하게 창문 사이로 비치는 햇빛에 눈을 떴다." - 햇빛이 잘 드는 동남향의 창문 달린 집
"푹신한 침대에서 일어나 물을 마시러 거실로 나섰다." - 포근한 침구가 다 갖춰진 방과 거실
"집에 있는 반찬과 찌개로 아침을 간단히 먹는다." - 누군가 나를 위해 음식을 해주는 정성
"친구에게 깜짝 선물을 준비하면서 친구가 좋아할 모습을 상상한다." - 주변 사람을 챙길 여유
"겨울을 맞아 새로운 코트와 따뜻한 패딩을 엄카 찬스로 샀다." - 유행을 챙기며 예쁠 수 있음
"옷에 뭐가 묻으면 물티슈를 뽑아 대충 털어낸 뒤, 세탁통에 넣었다." - 물가에 무감하며, 상품 비교보다는 기존에 쓰던 좋은 걸 씀
"저녁에는 친구와의 약속이 있고, 친구에게 기분으로 가끔 밥을 사주었다." - 돈으로 기분을 낼 수 있음
"유사시에는 나도 모르는 보험에 들어 있어 병원 가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추울 때면 난방 온도를 최대로 올려버렸다." - 보험료, 관리비 등을 누군가 계속 내고 있음
"용돈은 항상 남고, 저금한다." - 가용 예산 자체를 세울 필요가 없음
...(중략)
60만 원으로 독립을 했다기엔, 나는 너무 긍정적이었다.
60만 원으로 독립을 했다기엔, 나는 너무 포기한 게 없었다.
60만 원으로 독립을 했다기엔, 나는 너무 손에 물기가 없었다.
60만 원으로 독립을 했다기엔, 나는 너무 알뜰한 척을 했다.
60만 원으로 독립을 했다기엔, 나는 너무 함부로 독립을 입에 올렸다.
60만 원으로 독립을 했다기엔, 부모님 품 안의 재롱잔치였다.
60만 원으로 독립을 했다기엔, 나는 너무 예뻤고 깨끗했으며 여유로웠다.
본 시리즈는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