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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숨날숨 Jul 20. 2023

자유 에세이

[숨GPT] 열 여덟 번째 의뢰 - 방어는 통통하지 않았다

[숨GPT] 열여덟 번째 의뢰.  
자유롭게~ 에세이~
- 투자자 김떠르 -

...

의뢰하신 글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에세이<방어는 통통하지 않았다> 작가: 김수민 / 투자자: 김떠르


올해 방어가 아주 물올랐어. 통통해. 일본에서는 방어에 초콜릿을 먹인대. 유자도 먹이고 귤도 먹이고. 유자향이 나는 방어라... 레몬을 안뿌려도 되겠는 걸. 붉은빛 분홍빛 선홍빛 흰색빛. 등살 뱃살 배꼽살 가마살 사잇살. 수민아 방어가 맛있어? 그래서 그런 거였어?


당신을 위한 방어 분자요리 코스
# 에피타이저 - 거품으로 변형시킨 유자 방어 뱃살 샐러드
 
세부 요리법 부정: 원초아의 위협적인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외부의 실재나 사건을 아예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


아니 에르노, 예 에르노, 아니 포르노, 예 포르노, 얘야 사람 이름 갖고 장난치면 못써. 내 머릿속 생각들을 누가 알게 되면 어쩌지? 내가 집에서 널부러져 있는 모습을 누군가 보고 있다면? 제발 그러지 않게 해주세요. 나는 그리 착하지 않은 것 같은데. 아니 이 정도면 착한 걸 수도. 다른 사람 머릿속엔 무슨 생각이 있담?

내 앞에 앉아있지만 생각을 알 수 없는 네가 목적지였다.

“너는 무슨 생각해?”

“아무 생각 안해.”


불가사의에 있어 즉석으로 나온 명쾌한 답변은 믿을 만한 게 못됐다. 모름지기 비밀은 알듯 말듯 의뭉스럽게 조용히 말해줘야 하는 거였다. 어떻게 아무 생각 안할 수가 있지?

결국 아무 생각이 없다는 말은 생각이 없다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한 생각을 알리고 싶지 않아 일부러 두루뭉술하게 표현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금 이 문장에서 생각이라는 단어는 몇 번 나왔을까요?

그날을 시작으로 나는 삼 년 간 매번 똑같은 질문을, 너는 매번 똑같은 답변을 했다. 백오십칠만 육천 팔백분 후에서야 질문자가 답변을 공식 채택했다. 내공냠냠으로 신고 당하지 않은 건 참으로 다행이었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구나. 삼년 동안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내게 너는 친절했다 참. 모든 사람이 무표정 속에서 사람 이름 갖고 장난치고 있진 않았다.



# 메인 디쉬 - 수비드 된장 방어등살무조림

세부 요리법 억압: 원초아의 위협적인 충동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여 의식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무의식적으로 막는 것. 쉽게 말하면 욕망을 잊으려 하는 것이다.

어느 날 밤, 에이즈 검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내게 그거라도 남겨놓았는지 모르잖아.’ -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중

에펠탑은 보이지 않고, 먼지를 들이키겠다는 포부로 문을 열어놓고 달린다. 외곽으로 향하는 파리 7호선 열차 안, 역방향 좌석에 앉아 있었다. 터지지도 않는 휴대폰을 부여잡고 있는 주위로 사람들은 저마다 책을 꺼내들었다. 그때 잠시 생각했다.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할 줄 아는 불어라고는 “Je ne peux parle français(저는 프랑스어를 하지 못해요)”인 내가 표지를 뚫어져라 본다고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래서하지만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파리로 출국하는 전날 한 가지 다짐을 했다. 감정을 느끼지 않겠다! 스페인에서 느꼈던 외로움이 꽤나 지긋지긋했던 모양이다. 감정을 느끼지 않으면 외로움도 슬픔도 느껴지지 않을 것이기에. 중2병스러워보여도 다짐은 꽤나 효과가 있었다. 친구가 더 이상 안부를 묻지 않는다거나, 그래서 즐겨찾기에서 연락처를 하나씩 삭제한다거나, 횡단보도의 앞 사람을 따라 가다가 보니 빨간불이었네. 오토바이에 치일 뻔하거나, 그래서 그 오토바이가 오토바이 떼를 모아선 둘러싸고 욕을 한다거나, 그래도 연락을 할 사람이 없다거나,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물론 길가의 꽃이 예쁘게 피어있거나, 직장 동료가 맛있는 쿠키를 주거나, 오렌지 빛 하늘에 두리둥실 에펠탑이 걸쳐 있거나, 기쁘지도 않았을 뿐이다. 한국 들어와서는 꿈을 자주 꾸었다. 파리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타는 날. 꿈에서는 말도 안되는 일이 말처럼 일어나고곤 한다. 유달리 차가 막혔지만 공항에 겨우 도착한다. 하지만 오분 늦어 비행시간에 맞추지 못한다든가, 이상하게 그날 짐을 다 싸지 못해서 결국 비행기에 오르지 못한다든가. 현실이었다면 티켓을 새로 끊었겠지만 꿈은 장편소설을 허락하지 않는다. 해결책은 없는 채로 곧 결말로 치달아간다. 인천행 비행기를 타지도 못하고 에펠탑이 보이지도 않는 샤를드골 공항의 출국장을 내내 맴돌고만 있었다.


# 디저트 - 초콜릿맛 방어 배꼽살 젤리

세부 요리법 합리화: 원초아의 위협적인 충동이 발현되었을 때
초자아가 반발하지 않도록 그럴싸하게 무마하려는 것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크게 지루하지 않다. 서점에 들어간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미끼는 여전히 반질반질했다. ‘단순한 열정 - 아니 에르노’ 소설을 선 채로 이십 분, 앉은 채로 삼십 분 읽으니 책을 덮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이렇게 쉬워도 돼? 어려워야 노벨문학상 탈 수 있는 거 아니었어? 라는 우문. 책날개에는 한 프랑스 여자가 서 있었다. 프랑스 국민 작가. 아마 오년 전의 표지에도 서있었을 수 있다. 앉아있었거나. 기다렸거나.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 아니 에르노

답했다. 이 사람은 본인의 삶으로 회를 뜨고 있었다. 등살 뱃살 배꼽살 가마살 사잇살. 누군가에겐 불법 낙태 시술, 불륜, 에이즈, 가정폭력, 가난.

누군가 사람을 적당히 만나다가 적당히 헤어지고선


“아 그 사람은 그럴 만한 가치가 없었다” 라든지

“어차피 안될 인연이었다.” 라든지

“설령 끝을 보았어도 좋지 않았을 거다.” 라든지

“생각해보니 그 사람은 나와 이 부분이 맞지 않았을 거야.” 라든지

“세상에 더 좋은 사람이 많아.” 라든지의 말로

복잡한 말을 낭비할 동안, 누군가는 최소한 단순하고, 열정이 있다.



작가의 말

방어를 좋아합니다. 겨울 방어는 기름지고, 여름 잿방어는 쫄깃하죠. 

과연 제가 즐겨먹은 방어는 다 통통했을까요? 오랜만에 회를 떠보았습니다.


***

[숨GPT] 당신의 상상을 초단편글로

의뢰는 선착순으로 받습니다.

3월엔 3000원, 4월엔 4000원…12월엔 12000원

인스타그램: @1second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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