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픔을 치료하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가 어느덧 나의 하루하루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나의 아는 모든 지인들이 내가 글을 쓰는 일에 집중을 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이해불가이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 글 쓰면 돈을 줘?"
" 돈 안 주는데 글 왜 써?
" 이미 하고 있는 일들로도 바쁜 데 거기까지 꼭 글을 써야 해?
" 학교 가서 다시 하던 공부나 끝내. 글 같은 거 쓰지 말고. 너 말고도 글 쓸 사람 많아"
" 이 세상에 글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할 일도 많은 네가 거기 까기 가서 글을 써."
글을 쓰면서 나에게 돌아온 주위에 모든 반응은 나에게 긍정적이라기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신경을 더 쓰라는 충고 아니 충고 조언 아닌 조언들이 더 쏟아졌다. 그리고 당연히 그 가치는 돈을 벌 수 있느냐 있지 않느냐가 중심이다.
맞다. 이 세상엔 나 말고도 글을 쓸 사람이 많다. 아니 너무나 좋은 글을 너무나 좋은 작가들이 많다. 그래서 그곳에 들어가 글에 대해 배워 본 적도 글이라는 것을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은 것인지도 모르는 정의도 모르는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은 무모한 용기일 수도 있고 무식한 용기이다. 거기에 더해 이 성적이 않는 이룰 수 없는 꿈을 쫓아가는 몽상가로 보일 수도 있다.
깊숙이 아프고 힘들었던 나의 아픔으로 인해 그 아픔을 글을 써가며 치유하고자 시작한 나의 글쓰기는 소리 없이 조용히 비를 맞으며 영양분을 빨아들이고 성장하기 위해 새싹을 틔우기 위한 흙 속에 묻힌 작은 씨와 같다. 어떤 씨는 건강해 바로바로 새싹을 틔우고 바로바로 성장하지만 나는 건강하지 못한 씨와 같았다. 건강하지 못하고 아픈 씨라 어쩌면 그런 나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희망이라는 것을 많이 기대하지 못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글쓰기에서 어느덧 나의 글을 읽는 독자분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쓰고 있는 글에 대한 책임감의 무게도 같이 실리 우는 시간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나의 깊은 슬픔에서 그러나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는 무엇인지 모를 나의 신념과 의지 속에 찾아낸 치료법은] 글을 쓰며 글로서 소통하는 치료를 나에게 스스로 주사처럼 투여하기 시작한 것뿐.
그 시작의 마음을 자세히 모르는 지인분들 입장에서는 나에게 위와 같은 질문들이 당연한 모습이며 자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직은 나의 모든 지인분들에게 이런 나의 깊은 마음들을 말로써 설명하고 이해하기엔 너무나 복잡하고 그 설명이 적절한 타이밍인지는 아직 아닌 것 같아 그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의무를 묵묵히 말없이 조용히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나의 삶 속에서 나 또한 많은 사람들처럼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의 현장 직업의 현장 회사의 현장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걸어왔다. 내가 원하고 싶었던 일도 별로 없었고 내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 일도 별로 없었고 무엇인가 열정이 넘쳐나 반드시 이것을 꼭 하고 싶다는 동기부여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 동기부여 목표 구체적인 목적이 있는 사람들이 그 일들을 이루어나가고 해내는 성과들을 보면서 나름 나는 언제 저런 동기부여가 생길까 많이 고민을 했었다. 그러다 보니 상황은 어는 순간 내가 원해본 적도 꿈꾸어 본 적도 욕심을 부려 본 적도 없는 일들을 생각 이상으로 거치는 경험을 통해 문득 깨달은 사실 하나가 있다.
그 사실은 사람들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반드시 도전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한 것을 나만의 답을 줄 수 있는 나의 분별력이다.
이 세상엔 구체적인 목표 구체적인 동기부여 확신에 찬 열정과 노력으로 원하는 것을 반드시 얻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 모든 것이 아니더라도 전혀 엉뚱하게 내가 해보고 싶지 않았던 내가 원하지도 않았던 직설적으로 말하면 내가 싫었던 일을 반드시 해보고 결과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 도전을 해보는 삶의 형태에서 사람들은 또 다른 의미 있는 삶의 모습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 일.
베이커리를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었지만 디저트 가게를 운영하기로 한 이상 맛있는 빵을 만들어내는 일이 내 앞에 닥친 현실 앞에 유튜브로 다양한 베이커리 책으로 다른 많은 빵집을 다니며 시중에 나와있는 빵 맛을 경험하며 일일이 혼자 공부하고 연구하는 과정 속에 나만의 티라미슈 디저트를 개발한 빵이 여행객 유럽인들에게 극찬을 받았을 때 실감했다. 유럽인들은 빵맛에 상당한 미식가들이 많다. 모든 디저트들이 유럽에서 건너온 것을 감안하면 그런 유럽인들에게 이탈리에서 만든 티라미수보다 내가 만든 케이크 스펀지 빵이 더 맛있다며 레시피를 꼭 가르쳐달라고 하는 그들에게 나는 처음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진실의 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었다.
내가 학교에서 공부한 과목들은 인문 사회 과학분야이다. 논문과 연구만을 집중한 게 다인 나는 한 번도 빵에 대해 배워 본 적이 없다. 빵을 반죽하고 오븐에 몇 도에서 굽고 디저트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고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알아 시피 인생에서 내가 원하는 것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원하지 않는 일을 반드시 해야 하는 삶의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는 선택의 자유권은 없다. 그 자유가 없는 인생의 순간에 내몰린 순간 나는 빵을 만들어야 했다. 결과물을 반드시 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위한 노력은 손을 수없이 오븐에 데게 만들고 칼로 손을 베개 만들고 12시간 이상을 서서 끊임없이 반죽 실패 오븐 실패를 경험해야 했다. 그 길고도 지루한 과정 속에 나온 나만의 디저트가 레시피를 요구할 정도로 유럽 손님들에게 요청을 받았을 때 생각했다.
'내가 싫어하는 일도 원하지 않은 일도 해본 적도 없던 일을 내가 진실된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다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처럼 노력해보자. 그 노력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런 나의 마음이 반드시 외면당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이 진실된 마음의 노력이 반드시 이 디저트를 먹는 사람에게 전달될 것이다.'
이 신념과 생각으로 밀어붙인 나의 빵 만들기 연구결과가 이렇게 보상을 받는 순간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 중에 중요한 것은 나의 진실된 마음으로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반드시 해내는 나의 마음의 태도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내가 스스로 제한하고 있었던 직업들 일들 현장들에서 더 이상 나를 나는 는 하기 싫어 이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야 그래서 안 할 거야 라난 생각의 제한에서 풀려났다.
현장에서 필요한 이성적인 논리와 판단력에 의한 거절과 No라는 것을 분별을 할 수만 있다면 나 스스로 내가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제한하는 나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그 누구도 모른다.
"You never know who will go on to do good or even great things ot become the next great influnecer in the world- so treat everyone like they are that person" From Kat
그래서 글쓰기 이 방법을 또 한 번 대입해보기로 했다. 나의 치유를 위해 시작한 글을 쓰는 것 그러나 글을 쓰면서 이 글도 나의 중요한 생활의 부분이 되어가는 이 경험들을 통해 나는 유명한 작가가 영향력 있는 작가가 되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스스로 나를 묶는 제한된 생각에서 풀어나기로 했다.
내 글이 그 누군가에게 치유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글이 되는 순간 나는 이미 세상에서 의미 있는 그 존재라고 생각하며 결과에 집착에서 벗어나 진실된 마음의 소통의 글로 먼저 다가가는 것을 배우고 실천하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싫어하는 일 피하고 싶은 일 안 하고 싶은 일들의 생각에서 벗어나 반드시 해보는 과정을 통해 그 누구도 모를 결과를 의미 있게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도 다 같이 성장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