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마리, 고생했어."

비 오는 날의 하루

by 숨은결

(그림 소설 연작-1번)


매우 흐리고 쌀쌀하더니 곧 빗줄기가 쏟아졌다. 하던 일을 멈춘 나는 노란색 비옷을 두르고 하늘색의 긴 머플러도 챙겨서 집을 나섰다. 꼭 가야 할 곳이 있다. 그곳에 가면 이런 추위도 잠시 물리칠 수 있으리라.

밖으로 나오니 하늘은 노란빛의 어두운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서 도시를 우중충한 잿빛으로 보이게 했다. 빠른 걸음으로 앞만 보고 걷던 나는 문득 앞서가는 검은 슈트 차림의 회사원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도 역시 빠른 걸음으로 앞을 향하고 있다. 어디를 저리 급하게 가는 걸까? 그래, 따뜻한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에게로 향하겠지. 어딘지 모르게 그 광경이 머릿속에 빗줄기가 흩날리듯 휙 스쳐가며 흩뿌렸다.

이윽고 내 목적지에 도달했다. 한적했다. 나는 빗물을 털어내고 얼굴과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정적이 흐르는 이곳이야말로 내게는 쉼터였다. 매일 오는 일은 아주 번거롭지만 그럴 만한 가치는 분명 있다. 눈에 띄는 작품 앞에 가서 한참을 서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똑딱똑딱…!

이제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올 때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밖으로 나서니 비는 여전히 오기 전 기세만큼 리듬감 있게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이 무척 생각나는 오후이다. 오늘도 내 하루의 끝은 어제와 같다. 이브 마리, 고생했어.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이브 마리의 하루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도록에 수록된 '빗속의 이브 마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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