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주타에서 하이킹을 하며......
카즈베기에 오자마자 왕복 30라리 주타행 차량 티켓을 이틀 전에 미리 끊었다. 좌석이 한정적이라 미리 끊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얘길 듣긴 했지만, 당일 아침에 나가보니 정원이 겨우 6명이다. 그 안에 들었으니 참으로 명예(?)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았으면 100라리로 택시를 타고 와야 했을 텐데 모처럼 엄청난 절약을 한 것이 매우 뿌듯하다.
아침을 챙겨 먹고 일찌감치 서둘러 숙소를 나서 예약한 차가 출발하는 장소로 향했다. 이곳이 관광지가 맞나 싶을 만큼 마을은 조용하다. 차는 시간을 맞추어 예정대로 출발했다.
스테판츠만다를 떠난 차가 30여 분쯤 달려 멈추어 선 곳에 내려보니 손가락으로 몇 집인지 세어도 될 것 같은 손바닥만 한 마을이 있는 주타이다. 한여름 성수기에 오는 손님으로 한 철 장사를 하는지 그나마 몇 개 되지도 않는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아 마을 입구는 휑하기마저 하다. 물 한 병 살 가게도 없고, 그저 끝없이 펼쳐진 산들만 끝을 모르게 이어져 있다.
처음 이십여 분은 오르막이라는 얘기를 많이 접한 터라 다소 힘들 거라는 예상은 했다. 초입새만 지나면 그 이후로는 다들 편편한 지대라서 힘들지 않은 무난한 코스라는 얘기에 조지아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산뜻한 산보가 될 줄 알았다.
오르막을 시작으로 헉헉대며 아무 생각 없이 길에 깔린 소똥, 말똥만 쳐다보며 걸었다. 얼른 이 거지 같은 오르막을 후딱 해치우고 싶었다.
'조금만 지나면 탄탄대로 아스팔트 같은 길이 나오겠지..... 이젠 유유자적하면서 가게 될 거야'
하며 차오르는 숨을 달래며 걸었다.
추위는 칠색팔색이라 혹시라도 고산지대라 추울까 봐 상하의를 겹겹으로 껴입고 왔더니 걸은 지 이십여 분쯤 지나자 삐질삐질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평탄한 길은 고사하고 놀리기라도 하듯, 심한 것 같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사람 약 올리기 좋을 만큼 오르락내리락하는 길이 반복된다
밟으면 빠지직 무너질 것 같은 다리로 개울도 건넜다. 요리조리, 삐뚤빼뚤한 길을 따라 가느라 가는데도 함께 출발한 사람들은 일찌감치 앞서 올라갔는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뒤돌아보니 내 뒤로 아무도 없다. 이러다 길을 잃으면 제대로 잘 찾아가기는 할까? 하는 걱정이 슬며시 든다.
다리는 무거워오고, 숨은 차 오는데 고개를 들어 앞을 보면 주타는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야?' 하는 쌩한 얼굴이다. 물 한 모금을 들이마셔도 펄떡이는 가슴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었다가, 그래도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걸어보랴 싶다가 마음이 이리저리 널뛰기하듯 한다.
흙 포대를 옹기종기 모아 징검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샐쭉 삐져있던 마음이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제풀에 풀어졌다. 소박하다 못해 어설픈 다리에 혼자 맥없이 심통이 풀리고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작은 호수에 다다랐다. 코룰디의 호수에 어이없어 한 뒤로 호수의 일반적인 크기에 내 기준을 들이대지 않기로 하고 나서는 그저 덤덤하다. 우리 일행이 일찍 온 편인지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숨도 돌릴 겸 여기서 그냥 눌러앉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누가 시험관처럼 나를 체크하는 것도 아닌데 어쩌랴 싶은 갈등에 잠시 흔들렸다.
뒤돌아 걸어온 길을 보니 제법 아득하다. 욕하면서 그래도 제법 왔구나 싶었다. 픽업하러 오는 차가 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 좀 더 올라가 보기로 했다.
폴짝 뛰면 정상에 닿을 것 같다. 길인 듯 아닌 것 같은 길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잘못 들어 다시 돌아 나오기도 하고, 어쩌다 잘못 간 길도 그냥 계속 가다 보니 또다시 제대로 된 길과 만나기도 한다.
'산 길도 이렇는데 어쩌면 우리 인생도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아는 길만 길인 줄 알고 그동안 아이들에게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나 역시도 어쩌면 길들여진 길에 나를 가두어 놓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크게 보고 멀리 가다 보면 결국엔 그 길이 그 길일 수도, 아니면 다시 만나는 길일 수도 있는 것을.... 지켜보는 인내심이 부족하여 닦달도 하였을 것이다.
문득 우쉬굴리의 호스 라이딩이 떠올랐다. 처음엔 무조건 사람들이 많이 다녀 빤히 나있는 길로만 말을 인도하려고 했다. 그 길로만 가야 되는 줄 알았다. 조금만 벗어나도 안 되는 줄 알고 길 안으로 끌어들였는데 차츰 말 타는 것이 익숙해지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는 말이 크게 길을 벗어나지만 않으면 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랬더니 크게 이탈하지 않으면서 제 갈 길을 잘 찾아갔다. 더욱이 물이 있는 길을 만났을 때는 피하지 못하는 개울은 어쩔 수 없이 물을 건너지만, 살짝 돌아가는 길이 있으면 굳이 물로 들어가지 않고 그 옆 길로 살짝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어쩌다 그런 거였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번번이 물을 만날 때마다 말은 똑같은 행동을 했다. 말도 제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런 말의 선택을 보고 머리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내 판단만 믿고 말을 내가 원하는 쪽으로 이끌려고 했지만, 말이 선택한 길도 틀린 것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그들에게는 그 길이 더 맞는 길인지도 모른다. 산을 오르는 중에 부드러운 가을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흔들고 지나갔다. 묵은 내 생각도 흔들고 들추며 지나갔다.
주타는 넓고 세상도 넓다. 이렇다 할 정답이나 정해진 길이 없는 우리의 인생은 그 보다 더 넓다. 그 안에서 내가 알고 있는 작은 생각이 전부인 것처럼 기고만장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주타에서 길을 잃고 헤매 보고서야 알았다. 길에서 길을 잃어보고서야 길을 보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새삼 이 나이에 나는 첫걸음마를 떼는 아이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또다시 건방진 생각이 고개를 쳐들면 우쉬굴리의 말과 주타의 길을 떠올려 보아야겠다.
아는 길만 길이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