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09. 카즈베기에서 동네 한 바퀴
카즈베기에서 3일을 머문다. 트래킹은 체력상 주타 한 곳만 할 거라서 일정에 여유가 있다. 조지아에 머무는 동안 날씨가 많이 도와주었는데 여기서는 많이 쌀쌀해졌다.
카즈베기에 들어서자 뚝 떨어진 기온 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 게다가 비가 자꾸 오락가락하여 특별히 어딜 나서기도 그렇고 해서 오늘은 방에서 빈둥거리는 호사를 누린다.
아침을 먹고 나서도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하며 모처럼 늘어진 오전을 보냈다. 하던 짓도 멍석 깔아주면 안 한다더니 더 쉬려고 해도 몸이 근질근질해서 옷을 차려입었다.
정오가 안 되어 숙소를 나와 타박타박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기로 했다. 사메바 성당으로 가는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옆으로 난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 보았다.
야트막한 철망으로 된 담장 너머 개, 닭, 소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제 볼 일을 보고 있다. 합의하(?)에 나눈 것인지 뚝뚝 떨어져 나름 사생활이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
눈 앞에 토실토실하고 색깔도 예쁜 닭 네댓 마리가 얼쩡거리는데도 멍멍이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드러누워서 오수를 즐기고 있다.
골목을 따라 걷다가 되돌아오는 길에 다시 만난 멍멍이에게 신호를 보냈더니 후다닥 철조망 앞으로 달려온다. 덕분에 우리는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애절한 여명의 눈동자 한 컷을 찍었다.
'너도 사람이 그립냐? 나도 내 고양이가 그립다'
어제 내린 비로 카즈베기는 더한층 깨끗한 가을을 품고 있다. 맑은 물로 수채화를 그린들 이렇게 맑은 풍경을 그릴 수 있을까?
빼곡한 빌딩 속에 살던 나는 눈앞에 보이는 카즈베기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단지, 카즈베기는 있는 그대로 지켜준 것이 고마워 사람들에게 다시 자연의 정취를 되돌려 주는 것 같다.
너무 투명해서 마음속의 속된 생각도 비칠 것 같다. 가는 곳마다 아무데서나 보이는 소도 사방에 먹을 풀이 지천이라 마냥 순하다.
소박한 동네 뒤로 버티고 있는 든든한 산은 기골이 장대한 보디가드처럼 마을을 품고 있다. 나도 온 힘을 빼고 경사진 아랫녘 어디쯤에 슬며시 기대어 앉고 싶다.
초등학교가 궁금해서 올라갔다가 공사 중이라 들어가 보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길에 만난 두 사내 녀석의 대화가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사뭇 진지해 보인다. 둘이서 담판 지을 일이라도 있는 한동안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오랜 시간 돌아다녀도 길에 보이는 사람은 어쩌다 한 두 명 눈에 띌 만큼 동네는 한산하다. 성수기를 비껴 난 시기라 그런지 메인 도로를 벗어나서는 여행객들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가다가 뒤에서 걸어오던 일본 여행객과 눈이 마주쳤다. 국적 불문하고 같은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묘한 동지애(?) 같은 게 느껴진다. 그녀는 이제 막 카즈베기에 도착해서 숙소를 찾아가는 중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버스 터미널 앞에서 다시 만나 같이 저녁을 먹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혼행의 묘미 중 하나가 길 위에서 다양한 여행자를 만나 여행이라는 공통 주제로 쉽게 친구가 되는 것이다. 혼행이 처음이라서 떠나기 전에 많이 긴장했다는 그녀는 앞으로 혼자 너끈히 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 씩씩하고 활달해 보였다.
별생각 없이 나선 동네 한 바퀴 산책에서 좋은 길동무를 만났으니 오늘 여행도 공친 날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