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우쉬굴리! 태어난 그대로

"그곳에 나의 집 지어 주~~~~~!"

by 파란 해밀



2019. 10. 03. 조지아 우쉬굴리



메스티아에 도착하자마자 다음 날 출발하는 우쉬굴리행 티켓을 예매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숙소에서 간단한 아침을 먹고 마슈로카로 두 시간을 달렸다. 차 타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평소 승용차, 버스, 승합차, 종류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멀미는 언제나 강 건너 남의 일이었지만 우쉬굴리 가는 길은 나의 상상을 대놓고 비웃었다.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도로에 왼쪽으로는 당장에라도 돌이 굴러 떨어질 것 같은 가파른 언덕이고, 오른쪽에는 가드레일도 없이 낭떠러지 아래로 계곡에는 시퍼런 물이 흐르고 있었다.



비포장 도로를 들어서자 자동차는 내 오장육부를 흔들어 다시 정리 정돈하려는 것 같았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좌에서 우로, 또다시 우에서 좌로 방향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흔들어댔다. 무사히 잘 도착할 수 있을지 연신 비닐봉지를 만지작거렸다.


한 줄에 3명이 앉는 좌석에 젊은 외국인 커플이 앉았다. 차가 흔들릴 때마다 남자 친구는 오른쪽 창가에 앉은 여자 친구의 허벅지를 지그시 잡아주며 연신 그녀를 챙겨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씩씩했다. 나처럼 차에 부착된 손잡이를 잡지 않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혼자 꿋꿋이 잘 버티고 있었다. 그런 반면, 나는 한 손에는 비닐봉지, 다른 한 손은 손잡이를 생명줄처럼 붙들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튕기며 부디 아침에 먹을 것을 확인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원하며 갔다.


문득 '신은 이럴 때 쓰라고 인간에게 손을 두 개 주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미동도 않는 그녀를 위해 남자 친구의 오른손을 매너용으로 쓰더라도 남는 왼손을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나를 잡아주면 될 텐데....... 그는 단군의 자손이 아닌지라 홍익인간의 실천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남편과 같이 왔다면 저 남자 친구처럼 나를 지켜주려 했을까?' 이럴 때는 갑자기 혼자라는 것이 아쉬울 때가 있다.

'아니야. 닫혀있는 왼쪽 창문을 슬그머니 열고 친절하게(?) 그쪽으로 나를 지그시 밀지는 않을까?' 혼행의 각오를 다시금 다잡고 버티며 마침내 우쉬굴리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 고생을 하고도 반드시 와야 하는 곳이란 걸 아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곳이 아직도 있었나? 가을 햇살은 바람에 씻기어 내려쬐고, 주변은 본디 태어난 그대로인 것 같은 우쉬굴리는 이제 방금 자연에서 태어난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다.



여행을 하면서 우쉬굴리에서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서러워했다. 칠레 파타고니아에서도, 페루 마추픽추에서도 들지 않았던 아쉬움이 우쉬굴리 쉬카라 가는 길에서 목이 부러져도 걸고 와야 할 것이 카메라라는 생각이 너무도 간절했다.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극심한 저질체력으로 혼자 다니다 보니, 언제나 짐 하나라도 더 줄이려고 온갖 꾀를 다 쥐어짠다. 마음에 드는 현지 특산품이 있어도 덥석 사지 못해 안타까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카메라는 나에게 꿈도 꿀 수 없는 사치품이다. 혼행족들에게 카메라가 둘도 없는 길벗임에도 언제나 가방 무게 앞에서 나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다. 최소한의 필수품만 담느라 담아도 배낭의 무게는 절대 녹록지가 않기 때문이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자마자 길을 나섰다. 동네 위로 빤히 난 길을 따라 걸었다. 그냥 북 뜯어서 벽에 붙이면 그림이고 작품이다. 덧칠하고 다듬을 필요가 없는 순식간에 필 받아서 그린 크로키처럼 인상 깊은 선이 굵은 풍경이다.



누가 여기에 감히 입을 대고, 누가 감히 여기에 색을 입혀 덧칠을 하겠는가? 길을 걷다 멈추면 그곳이 갤러리이고 작품이다.



거칠고 투박한 그대로, 그리다 말면 멈춘 그대로, 아무렇게 휘저어도 누구든지 이 앞에서 덜컥 숨을 멈추게 될 것이다. 속에서 치받아 오르는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해도 나는 이 곳에서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들소들이 뛰고 노루, 사슴 노는 그곳에 나의 집 지어 주~~~~"

"걱정 소리 없고 구름 한 점 없는 그곳에 나의 집 지어 주~~~~"
"언덕 위의 집 , 노루 사슴이 뛰어놀고, 걱정 소리 하나도 들리잖코 구름 한점도 없는 그곳"

"걱정 소리 하나 구름 한 점 없는 그곳에 나의 집 지어 주~~~~"
"노루 사슴이 뛰어놀고, 걱정 소리 하나도 들리잖코, 구름 한점도 없는 그곳"



어릴 적 틈만 나면 오빠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즐겨 부르던 노래다. 노랫말이 좋아 혼자 콧노래로도 자주 흥얼거리곤 했다.




아마도 그곳이 이런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걷는 중에 베쏘를 만났다. 그는 우쉬굴리에서 게스트하우스와 말을 기르고 있었다. 길 건너 맞은편에는 동생이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고, 겨울에는 우쉬굴리에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겨울 몇 달 동안은 트빌리시 집에서 목공예를 하며 지내다가 온다고 한다. 화려한 생활은 아니지만 그는 이 곳 우쉬굴리가 너무 좋아 떠날 수가 없다고 한다. 겨울마다 떠나 있어야 하고, 불편한 점이 없지 않지만 그것이 이 곳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방해하지는 못했다.



베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호스 라이딩을 하기로 했다. 그는 조금 기다리라며 언덕에서 풀을 뜯고 있는 말 두 마리를 데리고 왔다. 베쏘가 시키는 대로 안장 위에 올라탔다. 겁도 없이 내가 왜 이 짓을 시작했는지 말을 타자마자 후회했다.


말이 몇 걸음을 옮기는데 나는 금방이라도 아래로 나동그라질 것 같았다. 돼지처럼 꽥꽥거리는 나를 보고 그는 웃으며 괜찮다고 연신 다독거렸다. 방향을 전환하고 싶을 때는 이렇게, 멈추고 싶을 때는 어떻게, 달리고 싶을 때는 이렇게 하라며 몇 가지 안내사항을 설명해주었다. 그러고는 내가 마치 훌륭한 기수인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출발을 했다.



속으로 내가 미쳤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되뇌었다. 그냥 여기서 안 하겠다고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순식간에 골백번도 더 들었다. 그래도 내가 지금 여기서 안 하면 또 언제 해보랴? 포기하면 후회하지 않겠어? 하는 온갖 생각들이 흔들리는 말안장에서 수도 없이 교차했다. 그렇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가다가 엉덩이가 깨질 것처럼 아플 때쯤, '어? 전생에 나도 마부였나?' 하면서 어느새 말과 함께 리듬을 타고 있었다.



엉덩이에 감각이 거의 없어지고 목적지에 다다를 무렵, 눈 앞에 펼쳐진 장관은 엉덩이 반쪽쯤 누가 뚝 떼어가도 모를 풍경, 미친 풍경이었다.



우쉬굴리의 자연은 이렇게 제 마음대로 생겨놓고 무심한 척 나를 홀려대고 있었다. 수없이 찾아왔을 봄과 여름은 겨울을 밀어내지 않고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가을은 미리 겨울을 건네어주고, 겨울은 그렇게 오고 가는 계절과 더불어 함께 하고 있었다.



네 시간가량의 호스 라이딩을 끝내고 베쏘가 집에서 와인 한 잔 하고 갈 것을 권했다. 술이라고는 입에도 못 대는 내게 막걸리 한 뚝배기만큼이나 넉넉히 따라준다. 와인 두어 모금을 마시고 그의 게스트하우스도 구경하고 베쏘 집을 나섰다.



당일치기로 트래킹을 위해 들어온 외국인 여행객들이 거의 다 메스티아로 돌아갔는지 돌아오는 길은 한적해서 호젓하기만 하다. 먼지 풀풀 날리는 거리에 나의 온갖 상념도 폴폴 털어내 본다.



보잘것없이 얼기설기 대충 이어 붙인 담벼락을 보며 앞서기 위해 기를 쓰고 했던 숱한 경쟁도, 많이 가지려 했던 욕심도 듬성듬성한 담장 사이로 슬그머니 밀어 내어본다. 베쏘의 소박한 삶이 고스란히 이해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어느새 저녁 햇살이 내려앉을 준비를 하고 있다.



학교 선생님인 나토가 퇴근하고 와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뚝뚝한 그녀의 남편과 달리 그녀는 매우 상냥하고 친절했다. 비록 영어를 못해 초등학생인 아들을 대동해서 어렵사리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충분히 교감하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은 허름하고 시설에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그녀의 미소와 아름다움은 그 모든 것들을 모르는 척 눈감아 주기에 충분했다.



이튿날 아침을 먹고 다시 나서 본 마을은 촉촉이 젖은 빗물을 맞으며 말갛게 얼굴을 씻고 있었다. 어제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조용한 아침에 다시 동네 어귀를 걸어보기로 했다. 베쏘 집을 지나 수도원까지 가보았다. 누가 저 담장을 민트색으로 칠하라고 했는지 수도원을 살려주는 신의 한 수이다. 담장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지만 그 주변을 걷는 것만으로도 수도원의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마을을 되돌아오는 골목에서 젖 짜는 아낙을 만났다. 아마도 우리의 어머니가 아침 일찍 일어나 쌀을 씻는 것처럼 저 아낙은 젖 짜는 일로 아침을 시작하는 것 같다.



무심한 얼굴의 저 아낙도 우쉬굴리의 고단한 어머니로 어제와 똑같은 일상의 젖을 짜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쉬굴리는 날 것 그대로였다. 그래서 충격 같은 감동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더 이상 돈벌이에 굴복하지 않고 젖을 짜는 저 아낙의 느린 손짓처럼 우쉬굴리도 그렇게 남아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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