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 해밀 Sep 06. 2021

너나, 나나 마찬가지야




며칠 전, 아들은 코로나 백신을 맞았다. 대체적으로 백신을 맞은 다음 날이 많이 아프다는 얘기를 듣고 그다음 날 미리 연차를 내고 팔팔한 모습으로 퇴근을 했다.


"백신 맞은 건 어때?"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오늘 밤 자고 내일 되어봐야지"


1차 접종을 한 다음 날, 감기 몸살처럼 온몸에 근육통과 한기가 와서 꼼짝없이 하루 종일 누워있어야 했던지라 아들도 그렇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서 물어보았는데 멀쩡하다고 했다. 

밤늦게까지 무엇을 하는지 아들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컨디션이 괜찮다는 것으로 알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하느라 녀석의 상황을 챙기지 못하고 집을 나섰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문을 열고 확인하느라 오히려 잠을 깨우는 게 아닌가 싶어 그냥 출근을 했다.









밀린 업무처리도 하고, 쉬는 날이니 녀석도 늦게 일어날 것 같아 일부러 오전에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점심을 먹고 짬이 나서 이젠 일어났겠지 싶어 몸은 어떤지 전화를 해보았다.


"............."
"............."
"............."
"............."


'너무 깊이 잠이 들었나?'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벨 소리를 듣지 못하나?'
'너무 아파서 전화를 받지 못하는 건가?'
'혹시 정신을 잃고 쓰러진 건 아니겠지?'


그 후에도 몇 차례 전화를 더 해보았지만 여전히 아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점심을 먹자마자 집으로 향했다. 가는 차 안에서도 몇 번 더 전화를 했지만 여전히 받지 않았다. 가는 동안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생각은 점점 더 나쁜 쪽으로 치달았다. 후다닥 집으로 뛰어 들어가 아들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아들은 떡실신한 채 널브러져 있었다.


"아들, 괜찮아?" 이마를 만져보았다.
"네~~~~~~~~" 아들은 길게 기지개를 켜며 실눈을 떴다.
"열은 없어?"
"네. 아무렇지 않아요"
"근데 왜 전화를 안 받았어?"
"자느라 못 들었어요"
"에라~~~~ 이놈아"
"아아아아! 팔은 아파요"





© susan_wilkinson, 출처 Unsplash





오는 동안 마음을 졸인 게 억울해서 한 대 쥐어박은 게 하필 백신 맞은 팔이라 녀석은 아프다고 엄살을 떨었다. 나도 백신을 맞고 거의 한 달가량 팔을 들지도, 쓰지도 못하고 아팠으니 녀석의 팔이 아프다는 것에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짧은 시간이나마 간을 졸이게 만든 녀석에 대한 원망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벨 소리가 안 들려?"
"오늘 새벽에 잠이 들어서"
"으이그! 무슨 일이 난 줄 알고 놀라서 달려왔잖아"
"죄송해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들은 정말 말짱했다.


"엄만, 네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전화를 못 받는 건가? 별생각이 다 들었지 뭐야? 그래서 119를 불러야 하나 했네"
"하하하하"
"엄마는 너한테 그런 생각을 하며 달려오는데, 너는 엄마가 이런 상황이면 달려왔겠어?"
"하하하하, 당연히 안 왔겠죠"
"그래, 엄마도 자식을 낳아보고서야 알았으니 너도 자식을 낳아봐야 아는데, 너는 결혼할 마음이 없다 하니 이번 생애에 알기는 다 글렀다"
"하하하하"
"밥 챙겨 먹어. 엄마 출근한다"
"넵. 다녀오세요"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끝을 내고 돌아섰다. 자식이 때로는 부모를 실망시키기도 하고, 기함하게 하기도 하고, 슬프게 하거나, 화나게 만들어도 어쩌면 그 자식이 아픈 것보다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슴 언저리를 툭툭 털며 집을 나섰다. 

'그래! 너나, 나나 다를 게 뭐가 있어? 부모한테 무심하기는 마찬가지지......'




매거진의 이전글 ​무생채로 기억된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