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근처에 있는 작은 마트에 들렀다. 집에 가까워질 즈음, 들고 있던 비닐봉투가 조금씩 무겁게 느껴졌다. 얼른 집에 가서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몇 걸음 앞에는 70대 중반쯤 보이는 노부부가 느릿한 걸음으로 가고 있었다. 경계석으로 구분해 놓은 인도는 두 사람 정도 다닐 수 있는 폭이라 이미 그 노부부가 공간을 다 차지하고 있어 빨리 가자면 그들을 억지로 지나쳐야 했다.
가만 살펴보니 노부부는 단순히 느린 걸음이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남편을 아내가 부축해서 겨우 한 걸음씩 힘겹게 옮기고 있었다. 앞질러 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 부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따라 걸었다. 성한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발걸음 하나가 노신사에게는 무거운 십자가처럼 여겨졌다. 아무 소리 없이 남편을 부축하고 있는 젊지 않은 아내의 팔도 힘겨워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 같은 노신사에게 펄펄 나는 청춘이었던 때가 있긴 했을까? 잔뜩 알을 품은 한겨울 동태처럼 단단한 근육이 박힌 장단지를 가져보기는 했을까? 그도 분명 한때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객기도 부려봤을 테고, 힘차게 땅을 박차는 발걸음을 디뎠던 때가 있었을 텐데, 지금은 늙은 아내의 팔에 의지한 채 겨우 걸음을 옮기는 그를 바라보며 화려한 청춘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했다.
점점 늙어가는 나를 보며 그의 느린 걸음을 격하게 공감했다. 젊은 날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이 낯선 늙음이 어느새 나를 조금씩 침식하고 있다는 것을 안 어느 날, 친정어머니가 불편한 몸으로 왜 한사코 지팡이를 마다했는지 그 심정도 알 것 같았다. 언젠가 나도 저 노신사의 힘없는 걸음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어쩌면 그런 걸음조차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할 극한(?)의 겸손마저 갖추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가 나의 인생에서 가장 젊다"라는 말에서 틀린 글자 하나 없이 맞는 말이라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가슴 한 켠을 퀭하게 울리던 소리였는데, 느리게 걷는 노부부의 뒷모습을 보며 아직 누군가의 부축이 필요하지 않은 나의 쨍쨍한 젊음(?)이 고맙고, 지금 이 청춘(?)에 충실하자고 내 등을 토닥여본다.
손에 든 비닐 봉지가 갑자기 하나도 무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