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선물

by 파란 해밀


토요일 저녁에 영화를 보러 갔다. 코시국에 영화는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호사이지만 다소 늦은 시간에 상영하는 영화라 막상 나가자니 귀찮아서 예매를 취소할까 하다가 상영 횟수도 많지 않고, 꼭 보고 싶었던 영화라 무거운 엉덩이를 달래서 집을 나섰다. 이럴까 저럴까 한동안 망설였지만 거리의 활기찬 사람들을 보니 나도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너무 일찌감치 나섰는지 극장에 도착하고 보니 영화가 시작하기까지 30분이나 남았다. 늦은 점심을 먹은 지 꽤 되었고, 저녁을 커피로 때울까 싶어 카푸치노를 패스트 오더로 주문해 놓고 기다렸다. 매장에는 손님이 겨우 두 세명만 있을 뿐인데 생각 외로 내 순번은 금방 오지 않았다.



1515430.jpg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모니터 앞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만치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여자분이 종종걸음으로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매장에는 다른 손님이 없어 그녀가 향하고 있는 방향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나한테 뭐 물어볼 게 있나? 빨대나 휴지를 가지러 오는 거겠지..... 하고 나는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그녀는 내게 말을 걸었다.

"저...... 혹시 음료가 필요하시면 제가 사드릴게요"
".....???? 아, 아닙니다"
"괜찮아요. 저한테 오늘자로 만료가 되는 무료 음료 쿠폰이 있어서 원하시는 것 아무거나 드세요"
"괜찮습니다. 저도 주문해놓고 지금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생판 처음으로 받아보는 이상한 제안에 나도 적잖이 당황했다. 그녀가 무안해하지 않게 답하려고 했지만 깜짝 놀란 제안이라 급하게 한 대답 속에 충분히 그 의도가 담겼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음료를 주문했다는 내 말에 그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되돌아갔다. 마침 주문한 커피가 나와 빈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방금 그녀가 내게 한 행동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photo-1473181488821-2d23949a045a.jpg readysetfreddy, 출처 Unsplash


나는 가입한 영화 사이트로부터 해마다 등급별로 제공되는 무료 영화티켓과 팝콘, 음료 쿠폰을 받아왔다. 팝콘이나 음료수를 좋아하지 않아서 커피 쿠폰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가끔 아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서 녀석이 원하면 한두 장 정도 사용할 뿐, 제공받은 쿠폰 대부분을 고스란히 사장시키면서도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음료나 팝콘을 건넬 생각을 하지 못했다.

딱히 내가 팝콘과 음료수를 좋아하지 않으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사용하지 못하게 될 쿠폰이 아까워서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다가가 선뜻 제안을 하는 것도 내게는 어색하고 참 힘든 일이다.

자그마한 몸집의 그녀는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매진이 임박하다는 홈쇼핑 쇼호스트의 외침처럼 사용기한이 다 되어가는 쿠폰의 배수진을 친 막강한 위력 때문이었을까? 정작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도 재밌게 본 영화보다 그녀의 때 묻지 않은 낯선 선의가 오래도록 나를 벙글거리게 했다. 그녀는 무덤덤한 내 심장에 멀리멀리 퍼지는 커다란 물이랑을 그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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