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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Jul 23. 2022

숭숭 나트랑



저녁에 부산을 떠난 비행기는 자정이 다 되어 나트랑에 도착했다. 미리 신청한 픽업 기사가 입국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사방은 짙은 어둠이 가득했다. 한참을 달려도 마찬가지였다.


몇 년 전, 칠레의 푸에르토 몬트 공항에 도착했을 때가 갑자기 생각났다. 그때도 늦은 밤,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낯선 곳으로 실려가며 불안했었다. 그러다 기사가 틀어주는 음악에 온 마음이 녹아 될 대로 되라고 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며 이 또한 무사하리라 여겼다. 40분을 달려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다음 날 아침 숙소를 나서고서야 비로소 베트남에 온 것이 실감 났다. 곳곳에 보이는 마사지 샵과 쌀국수 집들이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제일 먼저 근처에 있는 자수 박물관을 찾아 나섰다. 얼마 못가 목덜미에는 땀이 삐질거리며 나기 시작했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넓게 펼쳐진 백사장에는 겨우 몇 명만 파라솔을 차지하고 있을 뿐 바다는 고스란히 비어 있었다. 바다도 코로나 앞에는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힘들게 찾아간 박물관도 마찬가지로 닫혀있었다.







그러고보니 많은 상점들의 셔터가 굳게 내려져 있었다. 관광지의 활기도 없고, 외국인도 어쩌다 겨우 한 두명 정도만 눈에 띄었다. 이따금 대형 버스로 실어나르는 베트남 단체관광객이 겨우 명목을 유지하는 것 같았다.


사람이 많고 복잡할 때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싫더니, 숭숭 이가 빠진것처럼 문이 닫혀있고 거리가 한산하니 그것도 딱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으니 사람 마음이 참 이랬다 저랬다 한다.







한국은 새삼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서 걱정하는데 반해, 이곳은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이 극히 제한적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3차 접종까지 다 마친 상태라 자유롭다는 것이다. 가게는 아직도 문이 닫힌 곳이 많은데 사람들은 마치 코로나가 종식된 것처럼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거의 쓰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았거나 나는 별탈없이 무사히 돌아가야 하는 터라 땀을 바가지로 흘리면서도 꿋꿋하게 마스크를 끼고 다녀야 했다.







나트랑은 해양 관광도시라 주로 물과 관련된 투어가 있었지만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아, 대신 동네 골목을 돌아보거나 숙소에서 수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의 여파인지 5성급 호텔도 많이 저렴한 가격으로 묵을 수 있었다. 혼자 나올 때마다 숙소 비용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는데 이번에는 코로나 덕을 좀 본 것 같다. 무엇이든 모두 나쁜 것도, 또 모두 좋은 것만도 아닌 것이 맞는 것 같다







시간은 많고 딱히 할 일은 없고 해서 동네를 돌아다니다 인생 첫 패디를 해보기로 했다. 손가락까지 하라고 직원이 꼬드겼지만 손톱이 갑갑하고 무거운게 싫어 발톱만 했다.


어떻게 저 작은 곳에다 그림을 그리는지 궁금했는데 머리카락 몇오라기 같은 붓으로 면을 메꾸어 나가는 손놀림을 보며 몇 만원이 결코 아깝지 않은 그들의 가치였다.


백수가 인생의 첫 패디를 하였으니 한국으로 돌아가면 할 일 없는 장에 볼 일이 없더라도 왠지 맨발로 돌아다니며 자꾸 자랑을 하고 다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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