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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Jul 24. 2022

비워도 비워도 달랏



나트랑에서 3박을 하고 달랏으로 넘어왔다. 고원지대라 사시사철 봄 같은 날씨가 돌아다니기에 그저 그만일 것 같아 1주일을 이곳에서 묵기로 했다. 무이네로 한 번 더 옮길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이삼일마다 짐을 쌌다 풀었다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 그냥 있기로 했다.


나트랑에 있을 때부터 속이 좋지 않아 소화제를 사 먹었는데 달랏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루에 한 끼만 먹는데도 그 한 끼마저도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좀 걸을라치면 때마침 우기라 툭하면 천둥, 번개와 소나기가 퍼부었다.






오후 두시쯤 좀처럼 하지 않는 맛집 검색을 해서 집을 나섰다. 한국에서 잃은 입맛은 여기 와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한 끼는 맛나게 먹어야 잘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마침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또 비가 억수 같이 퍼붓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모닝글로리와 두 가지 요리를 더해 생일상 같은 늦은 아점을 시작했지만 집 나간 입맛은 음식의 태반을 남기고 일어서게 했다.







비를 뚫고 마트에서 요거트와 물을 사서 돌아왔다. 아파트를 숙소로 잡았는데 달랏 날씨 때문인지 실내에는 에어컨이나 난방시설이 없었다. 더울 일이 없으니 에어컨이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비가 와서 추운데 난방이 안되어 옷을 겹겹으로 껴입고 있어야 했다.


언제 이런 세찬 빗소리를 들어봤나 싶다. 발코니로 들어오는 빗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호스트가 알려준 넷플릭스로 철 지난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았다.







더부룩한 속은 그나마 먹은 한 끼도 후회하게 했다. 걸으면 좀 나을까 싶어 실내에서 한동안 왔다 갔다 하며 걸었지만 그럴수록 속은 더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걷는 것이 오히려 속을 더 흔들어 놓는 것 같아 옆으로 누워보았지만 요동치는 속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걷거나 눕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밤 9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차라리 토하기라도 하면 빨리 해결이 될 것 같은데 그러지도 않는다고 투덜대는 것을 시작으로 토하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이젠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 들 즈음 넷, 다섯, 여섯 번을 토했다. 일곱 번을 토하고 나니 자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점을 먹은 지 열 시간이 지나도 토할 것이 있다는 것은 여섯 시간마다 꼬박꼬박 먹지 않아도 된다는 덧셈, 뺄셈 같은 간단한 셈을 머리 속으로 하게 했다.






속은 다 비워지지도 않았는데 습관처럼 또 음식을 먹고, 네 번을 토하고도 아직 세 번이나 더 남은 내 속의 토할거리는 어쩌면 필요 없는 욕심인지도 모른다.


자꾸 토할수록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 시간이 지나면 점점 나아질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생전 처음 와 본 달랏의 어느 아파트의 변기통을 끌어안고 비움의 그 절절한 의미를 나는 또다시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비울수록 가벼워지는 거야.....

비워야 낫는 거야....

비워야 채울 수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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