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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Jul 25. 2022

가격과 가치




소화제를 달라고 했더니 약사가 내 말을 잘못 알아들었는지 덩치 큰 인공 눈물을 내어놓는다. 소화제를 달라했다고 말하려는데 약사는 뚜껑을 돌려 입에 넣는 시늉을 하며 아침, 점심과 저녁에 하나씩 먹으라고 한다. 그제야 그것이 인공 눈물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소화제 한 번 참 요상하게도 생겼다. 무색, 무취, 무미라서 그런지 나한테는 그다지 효과가 없다. 뭔가 똑 쏘는 강렬한 까스활명수나 손가락을 따야 하는데 밍밍한 베트남 소화제는 먹은 티도 나지 않았다.






여전히 속은 불편하고 몸은 찌뿌둥해서 아침 늦게까지 누워 있었다. 한국에서 맞춰둔 알람은 여기에서도 6시 반과 7시에 어김없이 울어댄다. 9시, 10시가 넘어서자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으려니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딘가 나서야 되고,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침대에 누워 있는 게 자꾸 불편해졌다.


이젠 좀 그래도 된다며 또 다른 내가 반기를 든다. 돼, 안 돼를 속으로 거듭하다 도저히 안 되어 12시경에 옷을 갈아입고 나서려는데 갑자기 장대비가 내려 꽂히기 시작했다.






비가 와서 멀리 나서기는 글렀고 근처나 돌아보려고 숙소를 나와 두어 걸음 옮기기가 무섭게 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밤새 그렇게 토했으면 이젠 당연히 나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


도무지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 않아 약국을 다시 찾았다. 발을 옮길 때마다 울렁거리는 속은 기어이 길바닥에 사고를 치게 할 것 같았다. 바지에 똥 싼 사람처럼 어기적어기적 배를 움켜쥐고 걸어 약국에 도착했다. 증상을 얘기했더니 새파란 약 한 통과 이온 음료 한 병을 준다. 죽 같은 묽은 음식을 먹고 4알을 먹으라고 한다.


약통에 붙은 가격표를 보니 9 천동이다. 실화인가 싶은 가격이다. 인공 눈물 같은 소화제 3개에 천 원이었는데, 약 한통에 450원이라니 갑자기 신뢰감이 뚝 떨어졌다. 약효에 대해 약사에게 따져 물을 수도 없고 쌀죽 두 통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죽이 조금 들어가니 속은 더 난리법석이다. 별 수 없이 파란 통 약 두 알을 먹었다. 긴가민가하여 끝까지 시키는 네 알을 다 먹지 않고 일단 두 알만 먹어보았다.


5분 정도 지났을까? 그렇게 울렁거리고 요동치던 속이 차츰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며칠 만에 느껴보는 기분인가? 아직 명쾌하게 다 낫진 않았지만 그래도 걸어 다닐만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그동안 포장빨과 가격빨에 휘둘리며 살아온 속물이 소박한 값의 경이로운 약빨에 무한한 경의를 표하며, 껍데기의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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