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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Jul 26. 2022

어디까지 사람이야?




달랏에 와서 가장 먼저 가 본 곳이 자수 박물관이다. 나트랑에서부터 가려고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폐쇄되어 지 못해 아쉬웠는데 달랏에도 있어서 무척 다행이었다. 달랏의 박물관이 나트랑보다 훨씬 규모가 커 보였다.


외곽지역에 있어 그랩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 맞은편에는 사랑의 계곡이라는 유원지가 있었고 베트남에서 11만 동이라는 고액의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그 앞에는 대형 관광버스와 많은 인파들이 북적였다. 모처럼 관광지 같은 면을 보는 것 같아서 반갑기도 했다.







내가 그다지 즐기는 곳이  아니라 곧바로 박물관으로 들어갔는데 입장료가 무료다. 그런데도 그곳을 찾은 사람은 나밖에 없다. 졸지에 공짜를 밝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들어서는 입구에 내 눈을 끄는 색감의 도자기가 진열되어 있었다. 자수박물관에 웬 도자기인가 하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일일이 수를 놓은 자수 작품이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 보고, 또 들여다봐도 도자기 같은 자수였다. 헛웃음마저 나오려는 것을 겨우 삼켰다.






자수라고 해서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정도의 것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을 보기 좋게 비웃는 수준 높은 작품들이었다. 대나무, 연꽃, 호랑이 등을 지나치게 원색으로 표현한 부담스러운 것들을 빼더라도 몇몇 손에 꼽히는 작품은 한동안 그 앞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게 했다.


물감으로 색칠을 한 듯 자연스러운 색의 변화와 조화는 속으로 탄성을 지르게 했다. 그림을 그려도 저렇게 그릴 수 있을까 싶다.






박물관은 몇 개의 전시관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작품 전시관을 나오면 만드는 기초과정을 설명해 둔 곳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제작과정이 궁금했는데 다행히 짧지만 영어로 된 설명이 곁들여 있어 대략 그 과정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 종이에 밑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천에 본을 뜬다. 밑그림에 명암을 넣고 그대로 수를 놓는데 그 과정은 자수를 놓는 사람의 역량에 달렸을 것이다.


똑같은 대상을 보고도 그리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것처럼, 자수를 놓는 사람이 어떤 색을 선택하고, 어떻게 색의 변화를 주는지에 따라 한 땀, 한 땀 바늘이 지나간 자리에 꽃이 피고, 물이 흐르고,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담긴다.







머리카락 같은 수실로 아래, 위로 수 천, 수 만 번의 손길이 오가며 얼마나 숱한 날동안 천을 메꾸어야 했을까? 처음 한 땀을 시작할 때, 보이지 않는 그 끝이 너무 까마득해서 차라리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을까? 기능 좋은 전기 조명도 없던 옛날, 흔들리는 흐린 불빛 따라 고단한 마음도 따라 흔들리지 않았을까?


젊어서 즐겨했던 바느질이나 자수도 나이가 드니 눈이 허락하지 않는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안다. 그래서 누구인지도 모르는 베트남의 어느 아낙에게 깊은 경외감마저 든다. 그녀의 바늘 찔린 것처럼 주책맞게 자꾸 코 끝이 찡해온다.







한 점, 두 점  수를 놓으며 늙어갔을 그녀들은 얼마나 늙을 때까지 이 일을 했을까? 온종일 실오라기와 씨름하다 이따금 바늘에 찔리면 그제야 고개를 들어 달랏의 파란 하늘에 눈을 씻으며 끝내 바늘을 놓지 않는 자수의 장인으로 늙어 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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