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주는 위로

by 파란 해밀



책꽂이에 쌓인 먼지를 닦다가 구석에 꽂힌 노트 몇 권이 눈에 띄었다. 얼마나 긴 세월을 품었는지 색이 누렇게 바래있었다. 새삼스러워 노트를 열어보니 1988년 6월 6일을 시작으로 쓴 일기였다. 같은 해 5월 1일 결혼을 하고 그즈음부터 쓰기 시작한 것 같다.

뒤돌아보니 결혼 초에 참 많이 힘들어했다. 아직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낯선 결혼생활이 혼란스러웠고, 그럼에도 어쨌든 적응하려고 애썼던 절규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조금씩 마음을 다 잡아갈 즈음 큰 녀석을 임신했고, 배가 불러가면서 내 생각도 조금씩 커갔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엄마를 하면서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과, 녀석들 때문에 기뻤던 순간, 아이들로 인해 배웠던 것들, 그래서 나도 그들과 더불어 더 자랄 수 있었던 격정과 감동이 담겨있었다.

2년의 연애에서 느꼈던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서로 다른 성향의 남편과 결혼생활에서 부딪히는 갈등은 끊이지 않았고, 그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기까지 나는 일기장을 통해 담금질을 하고 있었다.





지금 같으면 편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일이 그때는 목에 걸린 커다란 알약처럼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서두에는 격하게 토해내다가 차츰 글을 써 내려가면서 스스로 안정을 찾고, 마음의 해법을 적은 대목에서는 젊은 그 시절의 내가 기특해서 지금의 늙은 내가 다독여주었다.

'그래, 이러면서 네가 자랐구나......'
'이렇게 애를 썼구나......'
'잘했다. 수고했다.....'





힘들 때마다 일기를 쓰거나,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렸다. 그러는 동안 다시 한번 상대의 입장에서 차분히 되돌아보며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내가 가야 할 방향이 조금씩 보이고, 그 갈등을 헤쳐나갈 용기가 충전되곤 했다.

그렇게 조금씩 마음을 다 잡고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것은 편안한 안식처이자 수더분한 친구 같은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명확한 답을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긴 넋두리도 묵묵히 들어주고, 내가 스스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두터운 노트에 쓰던 글을 요즘은 세상이 편리해서 어디에서든 손쉽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이가 들면 까맣게 잊어버릴지도 모를 오늘의 일렁임을 소소소 깨를 털듯 내 마음을 털어 담아둔다.

이따금 내가 쓴 옛 글을 다시 읽다 보면 선반 구석에 짱 박아 놓은 고구마 말랭이처럼 지나간 시간 속에 말라붙은 나를 회상할 수 있다. 아직 글을 쓸 수 있을 때, 아직 글을 쓰고 싶을 만큼 마음이 설렐 때 수를 놓듯 글을 새겨 놓는다.





누렇게 색이 바랜 사진첩의 팽팽했던 나를 보듯, 한 글자, 두 글자 안에 박힌 오돌돌한 그날의 감정을 고구마 말랭이처럼 꼭꼭 씹으며 기억하겠지. 나이 들고 늙어도 여전히 내 맘이 내 맘 같지 않을 때, 어쩌면 지금보다 느려진 타자 실력으로라도 속 깊은 친구 같은 글을 쓰며 지랄을 했다가 또 위로를 받을 것이다.

수 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좋은 벗 하나를 두었으니 다른 복은 없어도 친구 복 하나는 남 부럽지 않네......




매거진의 이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