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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Mar 30. 2023

쓸모 있는 엄마





"어머니, 여행은 4월에 가세요? 5월에 가세요?
"너는 엄마가 4월에 가는 게 좋아? 5월에 가는 게 좋아?
"저는 안 가시는 게 좋죠"


볼 일을 보고 있던 큰 녀석이 이렇게 말하고는 저도 겸연쩍은지 화장실이 떠나가도록 크게 웃는다. 그동안 녀석은 나의 여행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자유여행으로 혼자 페루나 칠레를 갔을 때조차 잘 도착했느냐는 안부 문자조차 하지 않은 놈이다. 그러던 아들이 아직 두 달이나 남았는데 내 여행 일정에 대해 묻는 것이 신기하고 감동(?)이었다.

그러나 그런 감동도 잠시, 관심은 개뿔이었다. 나에 대한 관심이나 챙김이 아니라 그저 제 일신의 불편함이 먼저 걱정되어 물어본 것이다. 다른 때와는 달리 한 달 일정이라 녀석도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은 기껏해야 3주가 최장기간이었는데 한 달은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다른 것 같아 보였다.  






© itsdavo, 출처 Unsplash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쓰임새는 다양하고 가성비 갑이다. 가끔 아들이 아침에 못 일어나면 강력한 알람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과업(?)을 완벽히 이행하고, 빠듯한 아침 시간에 먹고 가기 좋게 다양하면서도 간단한 메뉴로 식사를 대령(?) 해주고, 운동 때문에 주중에는 저녁을 안 하는데 아들이 운동을 안 가고 곧바로 퇴근할 날을 기똥차게 알아차리고는 우렁 각시처럼 저녁 준비를 해 놓는다.

이제는 불문율이 되어 외출하고 오는 녀석이 커피를 사 들고 와서 그 정도는 얻어먹지만, 여전히 내 카드가 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시시콜콜 잔소리를 퍼부어 대는 엄마도 아니니 내 아들이라는 자리는 꿀 보직(?)이 아닐 수 없다.






© Pexels, 출처 Pixabay






사정이 있어 2년가량 독립해서 지내다가 집으로 다시 들어오던 날, 빨리 돈을 모아서 분가할 거라고 호언장담하던 녀석은 언제부턴가 그 열의가 도무지 보이지 않아 어느 날 물어보았다.

"너 독립할 거라더니 열심히 돈 모으고 있어?"
"저 독립 안 할 건데요?"
"아니, 왜? 그렇게 독립할 거라고 큰소리치더니"
"하하하....! 어머니랑 사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고 좋아요"
"왜? 아직 엄마가 쓸모가 있어?"
"하하하..... "


녀석은 이리저리 계산기를 두들겨보고 독립하지 않는 것이 남는 장사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2년 동안 혼자 지내면서 좋은 점도 있었겠지만 그것보다는 집에 남는 것이 더 많은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퇴직을 하고 나서는 나를 먼저 생각하고 내 삶을 살아보고자 했지만 여전히 소소한 걸림돌이 있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내 욕심만 부리는 것 같아 멈칫멈칫 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렇게 간절했던 어학연수도 선뜻 떠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번 여행도 나간 김에 그 옆 나라를 몇 개국 더 여행하고 왔으면 하는 생각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도 내 꿈과 내 자리의 책임을 조율한 선택이다.  

한 달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것이다. 그동안 녀석은 나의 부재를 얼마나 불편해하고, 한편으로는 또 편안해할지도 모른다. 아직은 나를 쓸모 있는 엄마로 여겨주니 붙어 있겠다고 하지만, 언젠가는 녀석으로부터 그 쓸모가 다 할 날이 올 것이다.

쓸모라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큰 원동력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세월 따라, 나이 따라 속절없이 변하고 마는 것이 또한 그 쓰임이니, 자식에게 쓸모 있는 엄마로부터 이제는 내게 쓸모 있는 나를 위해 조금씩 조금씩 나의 쓰임을 모아가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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