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일을 보고 집으로 오는 길에 지하철을 탔다. 낮이라 그런지 빈자리가 있어 자리에 앉았다. 다음 역에 도착하자 내가 앉은자리에서 대각선으로 보이는 출입문으로 몸집이 있는 중년 아낙이 손수레를 끌고 탔다. 조금 전까지 한두 개 있던 빈자리는 이미 다 차서 그 아주머니가 앉을 자리가 없었다.
나이는 60대 중반으로 나와 그다지 차이가 나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살이 쪄서 무릎이 안 좋은지 걷는 것이 둔해 보였다. 출입문 근처에 앉은 그 누구도 선뜻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은 없었다.
갑자기 나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불편해졌다. 거리는 있었지만 나라도 자리를 비켜줘야 될 것 같아 그녀와 눈이 마주치기를 기다리며 계속 바라보고 있었지만, 출입문 주변을 서성이더니 거리가 더 먼 쪽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백수가 되고 나서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낮에 버스나 지하철을 타다 보면 가끔 앉아서 가는 호사를 누린다. 그럴 때마다 연세가 있거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보이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불편해진다. 거리가 가까우면 앉으시라고 권해 드리면 되지만, 그렇지 못할 만큼 붐비는 버스 안에서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쉽지 않아 괜히 마음만 좌불안석이다.
황당한 일은 아줌마 퍼머를 한 중년 여성을 보면 자꾸 일어나야 할 것 같아 엉덩이가 들썩거린다는 것이다. 나와 나이가 별 차이가 나 보이지 않는 연령대인 것 같은데도, 오랜만에 버스를 탄 백수는 수 십 년을 거슬러 아직도 내가 버스를 타던 10대, 20대인 줄 착각하는 것 같다.
어느새 나도 백발이 성성하고, 잔주름이 하나, 둘 찾아와 내 나이를 잊지 않게 알려주는데, 검은 염색약으로 백발을 칠하고, 모자로 얼굴을 가렸다고 나이가 줄어들 리 만무한데 깜빡깜빡하는 내 기억력은 자꾸 그것을 잊어버린다.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나, 퇴근하던 버스에 앉아 피곤에 못 이겨 졸다가 고개가 부러져라 방아를 찧곤 했다. 놀래서 정신을 차려 보면 옆에 연세가 있는 사람이 서 있는 것을 알면서도 무거운 눈꺼풀에 눌려 이내 잠에 떨어지곤 했다. 순간순간 정신이 들 때마다 불쑥불쑥 들었던 그 불편함이 육십을 넘긴 지금도 갓 건져 올린 물고기처럼 펄떡펄떡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