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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Apr 03. 2023

나도 쓰레기통




오늘 아침에 음식물 쓰레기통을 씻었다.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몇 번 슥슥 문질러 닦으니 방금 사 온 것처럼 금세 깨끗해졌다.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가 막 시행되던 때였다. 직전까지 우리가 먹던 음식이었는데 그 경계를 넘어 쓰레기가 되는 순간부터 손끝에 닿는 것조차 꺼려졌다. 분리수거를 하고 비운 쓰레기통에는 또다시 먹고 남은 음식물이 쌓이고 버리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 다니러 오신 친정 엄마가 음식물 쓰레기통을 보고는 기겁을 하셨다. 분리수거 시행 초기라 쓰레기통을 씻지 않고 연달아 서 너 번 사용한 것 같다. 그러니 찌꺼기가 쓰레기통에 잔뜩 말라붙어 있었다. 


"으이그~~~! 이걸 비우고 나면 씻어서 써야지"
' 냄새나고 더러운 음식물 쓰레기통을 씻는다고????'


엄마의 지청구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손가락조차 대기 싫은 음식물 쓰레기통을 설거지하듯 씻어야 하는 것이 의아했다. 집 안에 있는 휴지통은 비우고 나면 깨끗이 씻어 말리는데 음식물 쓰레기통을 관리하는 것이 처음이기도 하고, 이내 더러운 쓰레기를 담을 것이라 씻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엄마는 짧게 한 소리를 하시더니 쓰레기통을 씻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찌꺼기가 덕지덕지 붙은 쓰레기통은 온데간데없고 말끔해졌다.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했다. 엄마나 나나 주부이기는 매한가지인데, 나는 엄마처럼 그것을 씻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더러운 것을 담는 통이니까 같이 더럽다고만 생각했지 그것도 씻으면 깨끗해진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나 자신이 두고두고 우스웠다. 그 후로는 비우기가 무섭게 깨끗이 씻어 말리면 내 기분까지 덩달아 깨끗해졌고 그것이 좋았다.

요즘도 쓰레기통을 씻을 때마다 그날 엄마의 지청구가 떠오르곤 한다. 그 잔소리 뒤로 동무처럼 따라 들어오는 생각에 오늘 아침에는 쓰레기통을 더 열심히 씻었다. 더러워서 손이 가기 꺼려지던 음식물 쓰레기통도 씻으면 늘 새것처럼 반들반들한데, 어찌 나를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옛날, 엄마의 잔소리는 마치 쓰레기통만 지칭한 게 아닌 것처럼 내게도 똑같이 전해온다. 덕지덕지 들러붙은 찌든 때에 말라비틀어지지 말라고, 늘 아끼고 관리하며 새것처럼 여기라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쓰레기통을 볕이 잘 드는 앞 베란다에 내어 말렸다. 나도 살짝 같이 내어 말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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