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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Jul 20. 2023

어긋나는 디어 마이 러브




영화 "디어 마이 러브"를 보았다. 선장으로 일하다가 퇴역한 하워드는 아일랜드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혼자 살고 있다. 잘 나가는 자식들이 있지만 다들 도시로 나가 살면서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보는 사이다. 그나마 다른 자식들에 비해 가까이 살고 있는 딸이 간간이 들러 집안일을 봐주었지만 한계가 있어 딸은 아버지를 위해 가사 도우미를 채용한다. 

아버지는 혼자 있게 내버려 두라고 하지만 딸은 가사 도우미를 불러 아버지의 식사며 청소 등을 부탁한다. 같은 마을에 사는 도우미 애니는 마음을 다해 집안일을 했고 그렇게 일을 해서 돈 버는 것을 즐거워했다. 어느 날 쓰레기를 버리려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하워드의 선장 유니폼을 보고 그녀는 깨끗이 세탁을 해서 하워드 집에 걸어 둔다. 







그런 애니의 세심한 마음씀이는 알지 못하고 하워드는 애니에게 딸이 주는 것보다 돈을 더 많이 줄 테니 더 이상 집에 오지 못하게 하고, 모욕감을 느낀 애니는 일을 그만둔다. 그러다 하워드는 애니가 세탁해 놓은 자신의 선장 유니폼을 보고는 마음이 돌아서고 그 길로 애니에게 달려가 사과를 하며 다시 일해줄 것을 부탁한다. 

두 사람이 차츰 가까워지면서 어둡고 무기력했던 하워드도 많이 활기차고 밝아졌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딸은 한 편으로는 좋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런 아버지나 애니가 못마땅하다. 겉으로는 애니가 가사 도우미라는 것이 이유였지만, 안으로는 어렸을 적 아버지로부터 한 번도 다정한 모습을 보지 못했던 자신과, 한 번 배를 타면 5년씩 걸리는 아버지를 늘 그리워하다 우울증에 걸려 익사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우울한 시간을 보냈던 모녀와 달리 지금 너무 행복해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생소하기도 하고 배신감 마저 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딸은 뇌혈관 질환으로 가끔 정신을 잃는 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보내고 애니와 철저히 단절시킨다. 아버지는 애니를 간절하게 찾으며 딸에게 절규하듯 부르짖는다.


"애니가 없으면 나는 더 이상 사는 것 같지 않아.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야"

그 말에 딸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저 말은 죽은 엄마가 아버지를 향해하던 말인데......'
나는 이 대목이 영화의 모두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선장으로 일을 하며 평생 밖으로만 돌았던 하워드는 죽은 아내에게 그토록 간절한 디어 마이 러브였으나, 그는 아내가 원할 때 함께 하지 못하고 오히려 오랜만에 돌아온 집이 낯설었다. 







애니 또한 죽은 남편의 폭력 때문에 그의 무덤조차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서로 디어 마이 러브가 되지 못했다. 지금 애니와 하워드는 결혼을 꿈꾸며 디어 마이 러브가 되기에 충분하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었다. 노쇠한 몸과, 더 이상 허락하지 않는 건강, 남겨진 짧은 시간, 그리고 딸의 반대...... 철벽 같은 저항 앞에서 그를 찾아간 애니를 만나고 하워드는 결국 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단순히 이루어지지 못한 노년의 로맨스로만 생각하기에는 잔잔하지만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가 깊은 울림을 준다. 디어 마이 러브는 왜 번번이 어긋나기만 하는 건지....... 때가 어긋나기도, 상대가 어긋나기도 한다. 그러다 빙빙 두르고 둘러 다시 돌아온 길에서 우리는 가끔 놓친 디어 마이 러브를 그리워하며 후회한다. 







내가 누군가의 디어 마이 러브일 때 그 상대의 소중함을 알고, 나의 디어 마이 러브 또한 제 때 잘 사랑한다면, 놓치거나 헤어지고 나서 후회하는 어리석음을 없을 텐데...... 지금 내 손 끝에 닿는 디어 마이 러브를 진심을 다해 열심히 사랑할 때가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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