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이 입고 있는 여름 청바지가 있다. 디자인이나 색상이 마음에 들어서이기도 하지만, 시원하고 편해서 날이 더워지거나 여행을 갈 때마다 교복처럼 챙겨 입는다. 그동안 입은 세월이 있어서 색은 바래고 닳아서 허벅지 군데군데는 작은 구멍들이 송송 나 있다.
조금만 옷에 이상이 있어도 정리를 하는데 이 바지는 더 해져서 못 입게 될까 봐 세탁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다시는 이만큼 마음에 드는 여름 데님 팬츠를 구하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20년 세월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팬츠를 입고 있다는 의식을 하지 못할 정도로 가볍고 편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허리가 많이 커서 반드시 벨트를 해야 하고, 그래서 출입국 수속을 할 때마다 번번이 벨트를 풀었다가 다시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큰 편안함과 멋스러움이 있어서 그 정도는 기꺼이 감수를 한다.
벨트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흔쾌히 벨트를 받아들이고, 벨트를 하고도 허리가 커서 이따금 허리춤을 가다듬어야 하지만 이 모든 불편을 뛰어넘는 그 이상을 누릴 수 있다. 해가 바뀌어 낡은 청바지를 다시 꺼낼 때마다 올해도 입을 수 있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바지 하나도 오랜 시간을 묵히는 동안 낼 것 내어주고, 받아들일 것 받아들이고 나니 편안함이 체에 남는데 얽히고설킨 수 십 년 사람의 낡은 관계에는 여전히 오돌토돌 돌기가 남아 있다. 아침 외출을 위해 바지를 챙겨 입다 말고 송송 구멍이 나 있는 날근날근한 청바지 자락을 훑으며 내 속도 구멍이 숭숭 나 있는지 크게 한 번 숨을 쉬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