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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Aug 09. 2023

느리더라도......





토요일 아침, 빛이 더 뜨거워지기 전에 일찌감치 병원 진료를 위해 집을 나섰다가 마치고 오는 길에 아들 녀석 떡볶이나 해줄까 해서 동네 떡 가게에 잠시 들렀다. 소 포장을 해 놓은 가래떡 두 개를 집어 들고 계산을 기다리고 있는데, 먼저 온 손님의 마무리를 하고 있는지 가게 문 뒤로 가려진 주인아저씨는 기척이 없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렸지만 도무지 가게 주인은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 봉지에 담아서 돈만 건네면 되는데 왜 이렇게 기척이 없지? 하는 의문이 들 즈음, 먼저 온 여자 손님이 말을 했다.


"오늘은 사위가 없나 보네. 사위는 잘하던데....."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손님의 말이 있고 나서도 주인아저씨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 simonkadula, 출처 Unsplash





그 떡 가게 주인은 20년 전쯤, 동네에 있는 같은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었다. 가끔 가게에서 떡을 사기도 해서 헬스장에서 마주치면 가벼운 목례 정도를 나누곤 했다. 헬스장 건물 1층에 가게가 있었는데 손님이 없는 한가한 틈을 타서 그는 숙제하듯 열심히 상체 운동을 했다. 운동 때문인지, 직업 때문인지 민 소매 밖으로 나와 있는 그의 팔에는 커다란 송편 같은 근육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후다닥 운동을 하고 가는 작고 다부진 그의 모습에는 성실함과 부지런함이 가득 배어 있었다. 그런 그의 근면함 때문인지 가게는 날로 번창해서 근처에 더 크고 번듯한 곳으로 옮겨갔다. 간간이 떡을 사러 들르는 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다. 가게에는 주인아저씨가 있는 날보다 모르는 젊은 남자가 일을 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알고 보니 딸이 결혼을 해서 딸, 사위가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뭔지 모를 아쉬움과 허전함이 들었다.





© markusspiske, 출처 Unsplash




아마도 나와 비슷한 연령대라서 동지(?) 의식 같은 게 들었던 것 같다. 아직 일선에서 더 일할 수 있는데 벌써 뒤로 물러난 느낌이 들어서 그랬을 것이다. 어쨌든 가게에 들렀을 때 주인아저씨가 있으면 괜히 반갑고, 사위가 있으면 괜히 서운했다.



"원래 사장님이 원조 아닌가요?"
"사장님이 떡은 잘하는데, 카드 결제를 잘 못하네....."

그러고 보니 주인아저씨는 문 뒤에 서서 카드 단말기를 열심히 만지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을 끌었는지 여자 손님의 목소리에는 약간 짜증이 섞여 있었고, 결국 그 손님은 카드 결제 대신 계좌 송금을 하기로 했다. 그제야 문에 가려져 있던 그는 내가 들고 있는 떡 값을 받고, 봉지에 담아 주었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카드 단말기를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겸연쩍음과 무참함 같은 것이 섞여 묘하게 굳어 있었다.





© towfiqu999999, 출처 Unsplash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꾸준히 운동을 했는지 양팔의 근육은 카드 단말기를 당장이라도 때려 부술 것 같은데, 톡톡 건드리면 되는 간단한 단말기 조작이 익숙하지 않아서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그의 얼굴이 무거운 추가 되어 내 속에서 한동안 흔들렸다.


나이를 먹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달라지는 사회 환경이 그의 근면함 만으로는 대처가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세월 앞에 속수무책이라 방금 들어도 까먹고, 해 봐도 금방 잊어버리는 나이가 되었지만 비록 느리더라도 그가 당황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잘 따라가기를 바란다. 그것 때문에 스스로 뒷 방에 나 앉지 않기를 마치 내 일처럼 용을 쓰며 응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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