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 해밀 Nov 01. 2024

우는 고양이가 츄르 하나 더 먹는다




"맘마 줄까?"

녀석은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는 귀를 쫑긋 치켜세운다. 겨우 알아듣는 단어 중에 가장 강력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맘마다. 간식 봉지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나도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득달같이 달려온다.

아침에 일어나면 고양이 밥 챙겨 주는 것이 가장 먼저 하는 일과이다. 수분 섭취를 위해 최애 간식인 츄르를 물에 타서 츄르탕(?)과 건사료를 그릇에 담아 준다. 그러면 녀석은 제일 먼저 츄르탕을 마치 술꾼이 해장하듯 순식간에 들이키고는 자리를 뜬다.









백수가 된 이후 올해는 큰맘 먹고 김장을 해보기로 해서 아침부터 양념을 만들기 시작했다. 절임 배추를 쓴다 해도 김치 담는 것이 영 손에 익지 않아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참견 많은 고양이 녀석은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나를 따라 발에 밟힐 정도로 붙어 다녔다.

하도 걸리적거려서 멀리 있는 간식 통에 간식 몇 알을 넣어주었다. 요리조리 빼먹는 동안 홀가분하게 일을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잠시, 어느새 쫓아와 따라다니며 녀석은 양양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탕 한 그릇도 뚝딱 해치웠고, 일찌감치 간식도 먹었는데 뭐가 불만인지 따라다니면서 보챘다.









"맘마 다 먹었잖아. 간식도 먹었는데 왜 울어?"

녀석은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양념 준비로 주방은 난장판인데 녀석의 울음소리까지 더해져 정신이 없었다. 하는 수없이 츄르 하나를 꺼냈다.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녀석의 두 눈이 빛났다. 마지막 한 점까지 다 훑어 먹고는 그제야 시원하게 자리를 떠났다.








그런 녀석을 보며 문득 우는 아이 젖 준다는 말이 생각났다. 이렇게 우니까 젖을 주게 되는구나......  생전 울지 않았던 나보다 고양이 녀석의 처세술이 더 뛰어난 것 같았다.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소처럼 묵묵히 했다. 그래야 되는 줄 알았고 그렇게 밖에 할 줄 몰랐다.

아쉬운 소리를 할 줄도 몰랐고, 앓는 소리도 할 줄 몰랐다. 그래서 젖 달라고 우는 법도 몰랐고, 울어서 젖을 얻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고양이 녀석은 따라다니면서 찡찡거리더니 제일 좋아하는 간식을 덤으로 얻어먹었다. 나보다 몇 수 위인 건 분명하다.









만약 고양이처럼 나도 좀 울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명성을 떠올렸지만 암만 생각해도 내 적성에 맞지 않다. 좀 더 수월하고 쉽게 목표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하는 물음은 들지만 온당한 내 능력만큼의 위치에 있었고, 그 자리에 충실했으니 미련은 없다.

그럼에도 우는 고양이에게 간식을 주며 우는 아이에게 젖을 주는 상황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사람과 고양이 사이에도 감정이 오가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야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게 사람 살아가는 이치인 것 같다. 그것이 적당한 윤활유 같은 처세술이라면 그런 면에서 나는 영 젬병이었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챙겨 먹을 것 골고루 다 챙겨 먹고 가는 고양이 녀석을 보며 미련 곰탱이 같았던 나를 김치 양념과 함께 벅벅 버무렸다. 고양이도 겸비한 그런 테크닉도 없이 37년 사회생활을 무슨 깡으로 버티었나 싶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는 고양이처럼 미친 척하고 슬쩍 울어볼까 싶다. 그러면 누군가 공갈 젖꼭지라도 물려주지 않을까? 남은 생애는 나도 좀 영리하게 살고 싶은 유혹에 푹 빠져 보고 싶다.









고양이 울음소리에 미련했던 지난 나를 잠시 흔들어 깨웠지만 빙긋 웃고 만다. 별수 없이 생긴 대로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