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이제 셋째 아들로 강등됐어"
"이제부터 생이가 첫째 아들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생이한테 형님이라고 불러야 돼"
새 집으로 이사 온 후 한 달 만에 들른 큰 녀석에게 일러주었다. 무심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녀석이라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녀석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이곳으로 오고 나서 일부러 아무에게도 전화하지 않았다. 특히 같이 살았던 큰 녀석에게는 더욱더 하지 않으려고 했다. 녀석과 전화라도 하면 애써 참으며 버티던 그리운 마음이 한순간에 무너질 것 같아서 그랬다. 혼자 용쓰며 견디어 보려고 했다.
그럼에도 떠나온 내가 어찌 지내는지 녀석이 안부 전화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슴 한편에 살짝 걸쳐 놓았는데, 초반부터 강한 어머니로 육성(?) 하기 위함인지 혹시나 했던 기대는 여지없이 떨어져 나갔다.
처음 한 달 동안 적응이 안 되어 많이 힘들어할 때 가장 위로가 되어 준 것은 고양이였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문 앞에 앉아 격하게 반겨주고, 집 안에서 어딜 가나 따라다니며 내 주변에 있었다. 잠을 잘 때도 옆에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지켜주었다.
잠을 깨어 나를 내려다보는 녀석의 눈과 마주치면 그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따뜻한 눈빛에 뭉클했다. 녀석은 무슨 마음이었는지 몰라도 내게는 어느 아들보다 든든하고 큰 위안이었다.
사랑도 움직이는 판인데 아들 서열도 철저한 성과제로 운영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았다. 대전에 사는 둘째 녀석은 이사할 때 와서 도와주고 며칠 지내다 가서 본전은 유지할 수 있었고, 덕분에 차남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아무리 제 생활에 변화가 있어서 정신이 없다 쳐도 "어머니, 어떻게 지내세요?" 하는 문자나, 전화 한 통 없는 큰 녀석은 사실 셋째도 아까웠다.
반면, 밤낮없이 나를 지켜주고 따라준 고양이야말로 든든한 장남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했다. 그래서 세 아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동안 보여준 활동을 토대로 철저한 아들 성과 서열을 발표했고, 녀석들은 그 결과에 별다른 불만을 얘기하지 못했다.
장남이라고 해서 두둑하게 물려줄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덤으로 더 쳐 줄 것도 없지만 믿음의 상징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곁에 있는 고양이 녀석의 작은 어깨에 한동안 흔들렸던 내 마음이 기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은 내가 녀석을 케어한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한 달 동안은 녀석이 나를 보살펴 주었다.
지친 몸을 기대는 벽이 든든해지면 어쩌면 큰 녀석은 벽에도 밀려 넷째 아들이 될는지 모르겠다. 이 작금의 위태로운 사태를 큰 녀석은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운동하고 와서 내가 해주던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다며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전화가 왔다.
제 손으로 만든 김치볶음밥이 내가 한 것만큼 맛이 나면 이젠 그조차 물어보려고 전화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때는 작심하고 호적에서 완전히 파 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