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치기

by 파란 해밀


다니는 수영장에서 우연히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내가 주로 가는 자유 수영 시간대에 특별한 자격증을 위한 강습반에서 수영을 하던 여대생이다. 한두 마디 말을 섞다가 볼 때마다 인사를 하고 가끔씩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영을 배운 지 겨우 6개월이 되었는데 안전요원 자격증을 따려고 한다는 것이다.


아침 7시에 집 근처 수영장에서 강습을 하고, 오후에는 이곳에 와서 또 시험을 위한 수영을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 생각도 가물가물한 나의 수력 6개월 차라면 감히 도전할 수 있었을까 싶은데 그 용기와 열정이 볼 때마다 내 일처럼 뿌듯해서 헉헉대며 물을 헤쳐 나가는 그녀를 보며 혼자 빙긋 웃기도 했다.





2개월 만에 그녀는 원하던 자격증을 따게 되어 더 이상 수영장을 나올 필요가 없게 되었다. 마지막 날, 그녀는 레인을 건너와 상황을 얘기하며 인사를 건넸다.


"저, 이제 내일부터는 여기 수영장 안 나오게 되어서 인사드리려고요"

"섭섭해서 어떡해? 이곳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군데, 헤어지게 되어서 많이 아쉽네?"

"저도 보고 싶을 것 같아요. 자유 수영하러 이 시간에 가끔 올게요"

"그럼, 우리 송별회라도 해야 되는 거 아냐?





우리는 서둘러 수영을 마치고 근처 카페로 갔다. 알고 보니 내가 그녀의 아버지와 동갑이었다. 그런데도 나를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유쾌하게 얘기를 했다. 수영장에서 본 나의 인상이 처음에는 카리스마가 있어서 선뜻 말을 걸기가 망설여졌는데, 오리발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 친절하게 말씀해 주셔서 말을 건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허구한 날 듣는 그놈의 카리스마, 포스...... 도대체 어디에 그런 게 숨어 있는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암만 봐도 순둥순둥 해서 사기당하기 딱 좋은 관상인데 왜 다들 나를 그렇게 보는지 모를 일이다. 하마터면 더러운 첫인상 때문에 말도 건네보지 못하고 끝났을 텐데, 먼저 다가와 주고 나의 제안을 거부하지 않고 흔쾌히 따라나선 그녀가 참으로 고마웠다.





한 학기를 남겨 놓고 있는 그녀의 일상과 삶(?)을 조잘조잘 들려주었다. 취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그녀의 고민도 찌르르.... 하며 전해왔다. 스물다섯! 저 찬란한 인생의 봄이 내게 있기는 했는지...... 그녀와 얘기를 하다 보니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내 청춘의 기억이 되살아나 약을 올린다.


나의 청춘은 저토록 화사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래서 그녀가 더 예뻐 보였다. 한 계단, 한 계단 야무지게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가고 있는 그녀는 마치 속이 꽉 찬 노오란 배추 같았다.


"자기는 지금 인생의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때에 있다는 거 알아?

"네, 알아요"





모처럼 사귄 친구와 헤어지게 된 것은 무척이나 서운한 일이지만, 자신이 선사한 "참, 잘했어요" 도장이 선명하게 찍힌 손을 흔들며 떠나는 그녀는 가장 찬란한 현재의 가치를 잘 알고 있으니 언제나 그녀가 머물고 있는 자리에서 지금처럼 빛날 것이다.


3시간가량 카페에서 머물다가 그녀의 집 근처에 내려 주고 혼자 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가슴 언저리에 넣어 둔 소중한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들치기당한 것 같았다.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청춘의 상실감인지, 얼마 남지 않은 케이크 상자의 빈 바닥을 보는 안타까움 같은 것인지...... 일부러 천천히 왔는데도 집까지 다 오도록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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