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커피와 겨울 곰국

by 파란 해밀



매주 화요일 오전에는 영어 스피킹 모임이 있는 날이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면서도 반드시 이어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글, 그림과 수영, 그리고 영어였다. 나이가 들면서는 젊었을 때처럼 하고 싶다고 모든 걸 다 할 수가 없으니 내 상황에 맞추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다. 그래서 추리고 남은 것이 그 네 가지이다.


처음에는 꽤 멀리 있는 대학교 평생 교육원의 영어 회화 수업을 신청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카페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회화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참여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영어에 대한 열의를 가진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에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f73b5c19082c1bcf88ad660243ec7a31.jpg 출처 pinterest



누가 등을 떠밀어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도 아닌데 매주 화요일 아침은 카페를 찾은 회원들로 북적거렸다. 남의 나라말을 하려다 보니 때로는 안갯속에 갇힌 것 같은 좌절을 느낄 때도 있고, 그래서 때려치워야 하나? 하고 깊은 고민을 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서로 격려하고 토닥여 주며 이어온 게 어느새 1년이 되어간다.


화요일 아침, 집을 나서려는데 하늘은 뭐가 못마땅한 지 일찌감치 잔뜩 흐린 얼굴을 하고 거친 바람을 날리며 심통을 부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기세다. 날씨가 그러거나 말거나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토픽 내용을 다시 한번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카페에 도착했다.



d8509e2d9f578369799c3f4164f1ea4c.jpg 출처 pinterest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막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안에서 직원이 손에 커피와 빵을 들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아침을 안 먹어서 잠시 아침 식사를 하려는 건가? 하고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는 들고 온 빵과 커피를 누군가에게 건네주었다.


바로 카페 앞에서 떨어진 나뭇잎을 쓸고 있던 환경미화원이었다. "아이구! 감사합니다" 하는 말이 가게로 들어서는 내 등에 와서 꽂혔다. 비가 오려고 해서 아주 극심하게 더운 날씨는 아니지만 여전히 후텁지근했다. 그녀가 건넨 아이스커피 잔에 맺힌 투명한 물방울이 나의 어딘가에도 맺혔다가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b6e40f29a96a0e90dcbef5042965ac50.jpg 출처 pinterest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내 모든 감각을 일깨우며 흔들었다. 커피 한 잔과 빵 한 조각, 어쩌면 만 원도 채 안되지만 그것의 가치와 의미는 차가운 얼음물이 되어 내 마음 구석구석 문신을 새기듯 훑으며 지나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사람 마음 때문에 우리는 가끔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그날 아침, 나는 사람의 마음이 탱탱볼이 되어 천당에서 탱탱 거리는 것을 보았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놓은 실내에 들어와서도 나는 뜨끈한 겨울 곰국 한 사발을 들이켠 사람처럼 오래오래 속이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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