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빌리시에서 조지아를 떠나다
2019. 10.12. 트빌리시에서 조지아를 떠나다
메스티아에서 트빌리시로 들어왔다. 소형 비행기다 보니 날씨에 민감해서 종종 운항이 취소되기도 하는데 다행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조지아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쓴 행운의 카드일 것이다. 트빌리시에도 여전히 가을 햇살은 눈이 부시게 쏟아내리고 있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지하철을 타고 자유광장으로 나갔다. 한도 끝도 없이 내려가고 올라가는 조지아의 깊은 지하철에 익숙해질 즈음 이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내일이면 아름다운 조지아를 떠나야 한다. 조금이라도 트빌리시를 더 보기 위해 올드타운으로 갔다.
담백한 맛이 좋았던 작은 빵가게에 들러 빵 하나로 간단히 점심을 떼우고 박물관으로 향했다. 니코 피로스마니 그림을 보기 위해서다. 일전에 트빌리시에 들렀을 때는 박물관이 리모델링 중이라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허탕이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처럼 발걸음이 무겁다. 꼭 보고 싶은 그림이었는데...... 공사중인 박물관 앞에 아쉬움을 잔뜩 흘리고 돌아섰다.
출국 비행기가 내일 오후라서 다음 날 오전 온천을 예약했다. 15일동안 조지아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그동안 해보지 않은 체험을 해 보고 싶었다. 여행 중에 대중탕을 이용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무슨 바람인지 망설이지도 않고 덜컥 예약을 했다. 아마도 특이하게 생긴 목욕탕 건물에 혹해서 넘어간 것 같다.
동행이 있으면 좀 더 좋은 시설의 욕실을 써보겠지만 혼자라서 70라리 욕실을 사용했는데 혼자 쓰기에도 그저그만이다. 가격은 70라리부터, 90, 140과 200이 넘는 걸로 네 종류가 있다.
들어가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나 그럴 시간적 여유는 별로 없다. 20라리에 맛사지, 10라리에 세신을 할 수 있지만 다들 아프다는 후기가 많아 타올만 2라리에 빌려서 혼자 온천욕을 하기로했다.
욕실 오른쪽에는 온탕, 왼쪽에는 맛사지나 세신을 하는 돌침대가 있다. 물바가지용으로 들통이 있는데 사용하다보면 한국에는 흔해 빠진 플라스틱 바가지가 엄청 생각난다.
리셉션 직원이 탕에 오래 있지 말고 3분 정도만 있다가 냉수로 샤워를 하라고 했다. 얼마나 물 온도가 뜨겁길래 그러나 싶었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수온은 뜨겁지 않고 적당하다.
들어가면서부터 유황냄새가 거슬린다. 수온이 높지 않은데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탕에 오래 있을 수가 없다. 유황 냄새 때문인지 순간순간 답답해서 연신 냉수를 찍어발랐다. 이래서 직원이 냉온수로 번갈아 샤워하라고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돔으로 된 천정에 환기구가 있어 바람과 찬공기가 들어오지만 천정을 더 뚫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냄새와 실내 온도에 적응이 안된다.
한 시간이 짧지 않을까? 했는데 더 있으라고 해도 갑갑해서 있을 수가 없어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나왔다. 욕실에서 나오니까 날아갈 것 같다. 내가 나오자마자 아주머니 한 분이 대걸레를 가지고 욕실로 들어가 바닥을 금세 닦고 나온다.
목욕 중에도 과연 이 물을 사람이 바뀔 때마다 매번 교체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가급적 다른 사람이 사용하기 전 아침 일찍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온천을 마치고 바람도 쐴 겸 자유광장으로 걸어왔다. 박물관 맞은편 쪽으로 가다보면 주말에만 열리는 공예품 시장이 있다.
쥬얼리, 가방, 의류, 악세사리 외 여러가지 핸드메이드 소품들을 팔고 있는데 상당히 정교하고 예쁜 것들이 많이 있다. 주말에 트빌리시에 머물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작고 예쁜 선물을 사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나는 마침 두 번의 주말을 트빌리시에 있어서 두 번 다 들렀더니 나를 알아봐 주는 상인도 있다. 두어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굳이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다양한 수제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말 시장을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호스트는 정성스럽게 싼 츄르첼라를 선물로 건네준다. 무척이나 친절하고 깨끗한 숙소였는데 오래 머물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 곳이다. 주인아저씨 차로 공항으로 갔다. 가는 동안 차 안에서 단어 한 두개로 대화를 나누며 조금씩 서로를 알아갔다.
여유있게 나온 덕인지 탑승까지 시간이 꽤 남았다.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을 아는지 모든 신경이 한꺼번에 다 풀어진다. 그제야 나른한 피곤이 몰려온다.
작년에 조지아 여행을 모두 준비해놓고 떠날 날만 기다리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 여행을 취소해야 했다. 꼬박 1년을 기다렸다가 다시 올 수 있었다. 그동안 모든 여행이 계획한대로 순조롭게 다 이루어져서 처음으로 경험한 쓴 맛이었다.
'이럴 수도 있구나'
올해 다시 준비를 하고, 더 많이 기다린만큼 더 큰 설레임을 안고 왔다.
이번 조지아 여행을 통해 알았다. 무사히 떠날 수 있어서 행복하고 돌아갈 곳이 있어서 더 행복하다는 것을.......
어쩌면 우리는 돌아갈 곳이 있기에 자신 있게 떠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