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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 롤렉스는 왜 중고 시장을 공식화했을까?

by Roi Whang

중고 시계 시장은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니에요. 롤렉스가 직접 인증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명품 브랜드가 스스로 중고 시장을 ‘공식 무대’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재판매가 아니라 럭셔리 정의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nathan-aguirre-dlJkvGHjaCE-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Nathan Aguirre


럭셔리 시계 시장에서 중고 거래가 급성장한 이유는 단순한 합리적 소비가 아니에요. 2022년 이후 5.3% 성장한 중고 시계 시장은 새로운 방식의 ‘명품 소비’로 자리 잡았습니다. 경제학의 베블런 효과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지만 이제는 신제품만이 아닌 중고 시계도 동일한 상징성을 제공합니다. 소비자에게 중요한 건 ‘새로움’이 아니라 브랜드가 지닌 문화적 자본과 사회적 상징성을 손에 쥐는 것이죠.


여기서 핵심은 ‘정품 보증’과 ‘스토리텔링’이에요. 중고 시계를 구매하는 소비자는 단순히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를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시계에 깃든 역사와 스토리를 함께 소유한다고 느낍니다. 부르디외가 말한 문화자본 개념처럼 희소한 롤렉스를 손목에 찬다는 경험은 개인의 사회적 지위를 강화하는 수단이 됩니다. 그래서 중고 시계의 가치는 ‘상태’와 ‘출처’뿐 아니라 ‘과거의 이야기’에 따라 크게 달라지죠.


투자 자산으로서의 성격도 강해지고 있습니다. 경기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소비자는 실물 자산을 선호하는데 금이나 부동산 대신 고가 시계가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오른 겁니다. 신제품은 공급 제약과 높은 가격 장벽이 있지만 중고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접근이 쉽고 시세 차익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투자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매력적이에요. 아시아 시장 부진과 관세 문제도 이 흐름을 가속화했죠.


joppe-spaa-bo3KAZHZwIk-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Joppe Spaa


이제 브랜드가 움직입니다. 롤렉스가 직접 ‘인증 중고 프로그램’을 내놓은 건 단순히 제품을 재판매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소비자가 원하는 건 ‘안전한 거래’와 ‘브랜드가 보증하는 가치’이기 때문이죠. 이 과정을 통해 롤렉스는 중고 시장을 새로운 고객 접점으로 끌어들이고 브랜드 충성도를 한층 강화할 수 있습니다. 명품이 중고 시장을 제도화하는 시장은 ‘브랜드 경험의 연장선’으로 재편되는 거예요.


이 변화는 명품 정의 자체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더 이상 명품은 ‘새것’으로만 증명되지 않아요. ‘시간이 쌓인 가치’, ‘거래 가능한 희소성’, ‘투자 자산으로서의 가능성’이 결합하면서 중고 시계는 새로운 명품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소비자 행동 중심축이 ‘소유의 만족’에서 ‘가치 교환과 경험의 확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죠.


따라서 롤렉스의 선택은 산업적 대응을 넘어 명품 소비 패러다임의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브랜드가 스스로 중고 시장을 품는 순간, 명품은 더 이상 단일한 시점의 소유가 아니라 시간을 거쳐 순환하는 자산이자 경험이 됩니다. 앞으로 럭셔리 산업은 이 흐름을 어떻게 제도화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판도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Date: 2025.08.18 | Editor: Roi W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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