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의 추억

일의 기쁨과 슬픔, 갈림길과 수수께끼

by 백정순

해외살이 하는 한국인들의 삶을 담은 유투브를 즐겨본다. 우물 안에서 보는 엄지손톱만 한 하늘만 보는 일상이 때로 답답할땐 손바닥 속 사각형 창을 통해 넓은 세상을 여지없이 탐하게 된다. 다른 세상, 어느 귀퉁이에서 사람들은 무얼 먹고, 생각하고, 살아갈까 하는 유치하면서도 속된 호기심에 내 시간을 부질없이 보낸다.

어딜가나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기 마련이지만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삶을 엿보며 때로 나도 모르게 에너지와 위안을 얻을 때가 있다.


탄자니아에서 까페를 운영하는 중년 여성에 관한 이야기가 어느 날 문득 내 텅 빈 호수에 잔잔한 동심원을 그렸다. 영어 학원을 운영하다가 갱년기로 힘들어 그만 두고 이 곳 또 다른 대륙, 낯선 나라에서 제 2의 인생을 활기차게 꾸려나가고 있는 그녀의 얼굴엔 젊은 열정이 발그레하게 일렁였다. 사업 초기엔 산전수전 겪으며 힘들었지만 지금은 수십 명의 직원을 꾸리며 안정되게 까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직원들을 제 가족처럼 살뜰하게 챙긴 덕분일까, 그녀는 가르치는 일보단 경영이란 옷이 더 맞는 듯했다. 물론 학원도 사업이니 성공적으로 운영했을 것이고. 꿈이 뭐냐는 질문에 커피학교를 열고 싶다며 해맑게 웃었다. 이디오피아 못지 않게 커피로 유명한 탄자니아에 커피 관련 일은 많고 다양하니 커피학교를 열어 일자리를 창출해서 이 나라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포부를 수줍게 말하는 그녀는 내리막을 걷는 갱년기 중년 여성이 아니었다. 그녀는 무르익은 시간을 잘 볶고 그라인드해서 깊은 향으로 내리며 완벽한 한 잔의 인생을 만드는 장인이었다.


꼭 돈과 명예를 얻어야 마스터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이쯤 되면 우린 안다. 수년 전부터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고민해왔다. 아마도 생각없이 볶아댄 커피콩들이 이리 튀고 저리 튀며 탁탁거리던 시간을 보내다 이제 내게도 한 템포 쉬며 내 삶을 지그시 살펴볼 때가 되었다는 신호이리라. 커피 콩 하나 하나를 다시 면밀히 살펴보고, 고르고, 로스팅하고, 그라인드 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


저출산으로 학원사업은 궤멸되었다고 한다. 아니, 궤멸되어가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 궤멸의 칼날을 나 또한 피할 도리가 없다. 신입생과 등록생은 반에 반토막이 나고 학원은 우후죽순 생기고, 벚꽃 지듯 떨어진다. 어쩌면 나 또한 요 몇 년간 마음의 준비를 해왔는지도 모른다. 갈림길에 서 있는 나를 낯설게 바라보며 얼떨떨해 왔는지도 모른다. 작은 동네 교습소지만 내 일이란 자부심과 열정으로 이십 년이 넘게 운영해왔다. 이젠 나도 안다. 서서히 이별을 고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그 '서서히'가 몇 년을 끌었다. 부질없는 미련과 노욕임을 알고서.


일이란 게 그런 것이다. 생계를 위해 달려들어 함께 뚜벅뚜벅 걸어가다가 어느새 내 페르소나가 되고, 내 영혼으로까지 각인되어버리는 그런 존재라는 걸. 오래 해오던 그 일이 나를 차츰 배신해와도 선뜻 손절을 하지 못하는 애증의 관계가 되어버린다는 걸. 하지만 그 관계를 눈을 질끈 감고 청산해버려야 할 때가 반드시 온다. 내 몸과 열정이 사그라들며 순수했던 그 일이 에너지를 잃어가고 무너져가는 모습을 더 이상은 볼 수 없기에, 가슴이 미어지며 난 요즘 아픈 팔을 주무르며 수많은 밤을 설친다.


탄자니아 까페 사장님을 보며 난 야릇하면서도 수줍은 희망을 용기 내본다. 나도 남은 시간을, 남아 있는 내 커피콩들로 내 인생의 멋진 바리스타가 될 수 있을까. 시한부로 남은 내 일터에서 아이들의 모습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아이들 또한 애증의 대상이다. 예뻤다가 미웠다가 커피콩을 볶아대며 버텨왔다. 이젠 그 감정의 찌꺼기도 모두 여과될 시간임을 생각하며 또한 가슴이 미어진다. 또 시간이 지나면 이 미어짐 타령도 서서히 사라지고 나 또한 나의 버려졌던 황량한 땅을 갈고 일구어 자잔 바리 커피 묘목을 한 그루 한 그루 심으리라. 그 묘목들이 결실을 이루고 내가 멋진 바리스타가 될 지 그것도 수수께끼지만 그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시간들 또한 내게 주어진 축복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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