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와 오십견의 상관관계
봄은 이름 자체로 예쁘고 찬란하다. 입을 오무릴 땐 악인이 없다. 동그란 입술 모양에 어느 누구든 맑고 천진한 아이가 되고, 수줍음과 기다림이 입가에 흐른다. '봄'이란 소리가 동그란 입술로 나올 때 얼굴은, 가슴은 마냥 흐드러진다. 올해도 걷잡을 수 없이 봄은 찾아왔다. 스웨트와 코트를 넣을지 말지 주저하게 하는 얄미운 꽃샘추위도 완연한 봄에 대한 기대에 용서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봄을 되돌아본다. 이젠 한 해 한 해 시간이 갈 때마다 먼 추억보다 한걸음 저만치 서 있는 추억을 되돌아보게 된다. 딱히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시간의 양보단 질을 음미하려는 애틋한 감성이 나이가 들수록 돋아나는 건 아닌가 한다. 지난봄은 심히 당황스러워 나는 어이없이 흔들렸다. 맘먹고 한껏 단장하고 나선 약속시간 직전 소나기 폭탄을 맞은 기분에 설렘으로 맞은 봄은 곧 겨울이 되었다.
오랫동안 나름 성실하게 해 온 유산소 운동이 갈수록 몸을 배신해가니 뭔가 대책을 세울 궁리를 하던 차 집 앞에 필라테스 클럽이 오픈했다. 오픈 세일로 70 퍼센트까지 강습비가 깎이니 마음이 동했다. 그래, 이젠 근력운동을 해야 해! 연금보다 근육이라 하잖아. 내 몸엔 1 퍼센트의 근육도 없다는 구슬픈 자조를 하며 앉아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힘든 하루하루였다. 새 집, 새 동네로 이사 온 지 2년 째 사람 하나 사귀지 못하고 학원과 집만 오가며 칩거하던 나는 신세계를 맛보았다. 쭉쭉 빵빵한 아가씨와 영맘들로 활기가 넘치는 강습에 간만에 내 늘어진 신경도 팽팽해졌다.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을 늘리고 꽈배기하고 떨리게 하는 강습시간에 처음 몇 달간은 돈을 내고 고문을 받는 심정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기구들도 내 눈엔 마치 고문기구로 보였다. 누워서 양손을 형틀에 결박하고 매달린 사진을 보여주니 남편은 말했다. "돈 주고 고문받네. 왜 하냐? 힘들게."
몇 달이 지나고서 매일 필라테스 예찬론을 펼치는 밝아진 나를 보고선 남편의 입꼬리도 살짝 올라갔다.
6개월을 열일하고 구름 위를 우아하게 점프하는 발레리나로 변신한 나를 보고 흡족해하며 남편은 선물이다, 옛다하며 1년을 재등록해줬다. 재등록을 하고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을 때였다. 어느 순간 양 어깨에 통증이 찾아왔다. 어깨 통증은 팔로 내려와 뇌가 지시하는 명령어를 거스르기 시작했다. 설겆이, 청소는 커녕 장보기, 샤워를 할 때도 옷을 입을 때조차도 비명을 지르는 예기치 않은 나날이 지속되었다. 병원엘 가서 사진을 찍으니 양 어깨에 석회와 염증이 생겼단다. 어깨와 팔을 연결하는 회전근이 파열된 조짐이 보이니, 소위 오십견이 제대로 왔단다. 스쳐듣기만 했던 '오십견'이란 용어가 곧 나의 언어가 되는 순간이었다.
김춘수 님의 시『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의 구절처럼, 결국 오십견은 오랜 시간 잘못된 자세와 동행한 내가 불러주고 초대한 셈이다. 그러니 한탄해보면 무엇할까. 노화의 징조이며, 내 몸을 경시한 내 탓일 뿐. 한동안 필라테스 탓을 했다. 왜 돈 쓰고 어리석은 짓을 시작했던가. 약하디 약한 팔과 어깨를 무리하게 당기고 늘인 강사와 필라테스 점장에겐 한 마디의 호소조차 할 수 없었다. 왜? 한 교실에서 오래 함께 하던 운동 동료들은 모두 멀쩡했기에. 결국 부실했던 나의 탓이었다. 7개월이나 남은 수강권을 머리털 나고서 처음 당근앱을 깔고 반값에 팔았다. 그 후로 나에게 남은 건 끊임없는 치료와 재활, 재활 뿐이다. 통증주사와 연골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해도 딱히 뚜렷한 차도는 없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쪼금씩 쪼금씩 호전은 되는 듯 하다가도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올 땐 사정없이 두들겨댄다. 한달 전엔 팔이 하도 저려서 잠을 잘 못 자 병원엘 갔더니 오호라, 목 디스크까지 오셨단다. 종합선물세트다!
이 글을 쓰면서도 오분에 한 번은 목 스트레칭을 하고 오른쪽 팔을 주물러 주신다. 한 동안 셀프연민에 허우적거리며 글쓰기를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몇 달을 노트북도 열지 않다가 이윽고, 기어이 나는 나를 쓰다듬고 다독여주었다. 그래, 난 알려지지 않은, 무명이지만 책을 두 권이나 쓴 작가라고! 알아주지 않지만 글쓰기에 대한 짝사랑을 멈출 수 없는 나름 사랑스런 사람이라고! 여기서, 오십견과 목 디스크 따위에 굴복해버리면 안되지! 더한 것들이 올 수 있는 게 남은 시간이다. 내 몸을 보듬어 줄 시간에 의미를 두고 심호흡을 하며 나가자.
이젠 필라테스를 창시한 필라테스 박사의 사진이 박힌 액자를 보며 팔과 다리를 우아하게 치켜들며 운동하던 그 시간들을 되감기 해보는 여유를 가진다. 오늘도 나는 성실하게 내 안락한 공간에서 어깨, 팔, 목을 스트레칭하며 나만의 필라테스를 우아하게 해 나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