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에 대한 고찰
엄마의 취미는 곧 부업이었다. 아니, 엄마와 가족에겐 곧 생업이었다. 박봉의 공무원이었던 아빠 몰래 엄마는 수많은 부업을 했다. 그토록 취미와 생산이 슬기롭게 조화된 나날들이었다. 왜? 일하는, 아니, 취미에 몰두하는 엄마의 얼굴은 늘 진지하고 행복했으니까. 밤 한 자루 깔 때마다 자식들 입에 넣어 줄 과일 한쪽이 나오고, 생선 한 마리가 나온다는 기쁨에 고된 줄 몰랐던 엄마였다. 어쨌든 덕업일치의 시대인 요즘으로 말하자면 엄마는 선구자였다고나 할까.
엄마에 비해 나는 얼마나 행복하게 취미생활을 누려왔던가. 엄마의 희생 덕분이다. 외국어를 전공하면서 고상하게 덕업 일치된 삶을 살아왔다. 공부하고, 가르치며 여한없이 취미는 생산이 되어왔다. 결혼 초기에 빈약했던 우리의 경제에 도움이 된 일등공신이었고, 여행이란 비싼 취미에 더없는 일조를 했다. 외국어를 제외하고 내가 유일하게 몰두했던 것들은 수영, 도예, 필라테스였다. 필라테스는 비록 나에게 우호적이지 않아 빠른 이별을 고해야 했지만, 수영과 도예는 내게 진정한 휴식과 즐거움을 주었다.
막내인 늦둥이를 낳고 여행으로도 치유되지 않던 산후우울증을 수영은 물 속 부유하는 태아처럼 상처받은 나를 포근히 어루만져 주었다. 타고난 운동신경이 없는 나는 그래도 물에 뜰 수 있었고, 물을 타고 느끼는 수혜를 누릴 수 있었다. 수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친교로 더욱 수영이 좋아졌음은 물론이었다. 대략 수영을 즐긴지 10여 년이 후딱 지나갈 수 있었던 이유다. 이래저래 핑계와 게으름으로 수영을 놓은 지 꽤 시간이 흘렀다. 이제 시간이 주어지면 혼이 빠지듯 바삐 다녔던 새벽 수영이 아닌, 낮 수영을 고즈넉이 즐겨보고 싶다. 더 시간이 흐르면 쿵짝쿵짝 트로트 음악에 맞춰 신나게 팔을 흔들며 아쿠아로빅을 즐기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결혼에 위기가 오고, 일에 위기가 오고, 내 삶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을 때 도자기 공방을 찾게 되었다. 연소민 작가의『공방의 계절』이란 소설을 읽고 얼마나 내 얘기 같던지 무릎을 쳤다. 번아웃 된 젊은 아가씨가 동굴 속에 한동안 움츠려있다가 우연히 도자기를 빚게 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치유된다는 이야기다. 전형적인 이야기지만 그 얘기가 나와 너무나 맞닿아있을 땐 나에겐 특별한 것이 된다. 그 소설은 내게 특별한 소설이 되었다. 흙을 만지는 그 감촉은 지치고 상처받은 심신에 휴식을 주었고, 그 오붓하고 오묘한 감각에 입가가 올라갔다.
신혼 때 마련한 도기들을 대신해 어느덧 내가 빚은 밥공기, 국대접, 쟁반들이 자리를 차지해갔다. 부부싸움을 할 때 희생된 몇몇의 예쁜이들외엔 아직도 투박한 질그릇들이 내게 편안함과 정감을 주고 있다. 늦둥이가 빚은 아기돼지 한 쌍, 집의 파수꾼 역할을 하라고 빚은 부엉이가 거실 찬장에서 아직도 나를 지켜보고 있다. 공방에 가서 처음으로 빚은 아이는 꽃병이었다. 엉성하지만 단단한 그 꽃병엔 해마다 남편이 생일선물로 사온 꽃들이 소담스레 꽂힌다.
부유한 윗동네 사모님들이 차츰 자리를 차지해 서민 동네 이름 없는 소박한 공방의 분위기는 달라져갔다. 명품 자랑, 잘나가는 남편 자랑, 자식 자랑으로 소위 물이 흐려져갔다. 일 때문에 시간이 맞지 않아 그만두고 나왔지만 여전히 그 공방에서 두 손에만 집중하며 흙과 놀던 시간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오랜 내공이 깃든 도자기를 노후에 벗삼고 예술장터에 내다 팔고, 전시회까지 여는 왕언니들의 모습에서 내 미래를 배우기도 했다. 뒷방 늙은이로 나이 들어가고 싶지 않고, 남은 내 시간을 우아하게 빚어가리라는 다짐을 한다.
취미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다. 지금까지 내게 남아있는 취미는 문자를 배운 순간부터 이어온 독서와 그 책 속 별 같은 무한한 문자들이 낙하하며 길게 내린 꼬리들에서 필연적으로 이어진 글쓰기다. 어릴 때부터 세상의 수많은 직업들 중에서 가장 고귀해 보이던 업은 작가였다. 작가가 돈을 많이 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기에 더구나 그러했던 것 같다. 돈은 장사꾼이 벌고, 글을 쓰는 사람은 그냥 어린 마음에 범접할 수 없는 고상한 사람으로만 보였다. 이제서야 힘이 모두 빠져버린 두 팔로 나는 글을 쓴다. 돈 안 들고,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내 슬픔과 스트레스마저 정교하게 엮이며 결국 기쁨을 창조해 내는 가성비 짱인 이 취미를 만나게 된 인연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