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의 추억

프라이드는 갔지만 프라이드는 남았다

by 백정순

내 운전 경력은 짧다. 십여 년 남짓 될까. 뚜벅이 생활이 더 긴 셈이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원거리를 정신없이 오가며 일하고 엄마 노릇이라는 걸 해야 했다. 주 양육은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해주시니 당시엔 초보 엄마, 무늬만 엄마였단 걸 인정한다. 매일 학원 일을 마치고 귀가를 위해 한 시간 정도의 거리를 미친 듯이 러시아워를 등에 진 채 뚫어야 했다. 8차선 도로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차들에 끼인 채 운전대를 초조하게 두드리는 나날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집에 가고 홀로 남은 채 어린이집 선생님의 눈칫밥을 먹고 있을지도 모를 내 아이가 둥근 달처럼 차창 전방으로 둥실 떠 올랐다.


어느 날엔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를 일분이라도 빨리 찾으려는 맘에 질주했다. 그날따라 유독 폭우가 쏟아져 도로에 퍼진 차들 때문에 평소보다 지체되었다. 번쩍! 갑자기 눈앞에 번개가 내리쳤다. 설상가상이라더니 이제 번개까지…. 콧등이 축축해지며 참을 수 없이 뻐근해져왔다. 아파트 화단 소나무 지지대에 정통으로 부딪친 콧등 위로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아, 이 번개구나. 번개고 천둥이고 진상을 규명할 여유조차 없었다. 어린이집 문을 벌컥 여니 아이를 돌보던 원장님께서 화들짝 놀라셨다. "어머나, 윤석 어머니! 코가… 빨리 병원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선생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아이를 잽싸게 품에 안았다. 휴! 코보단 아이의 따스한 향기가 소독제이자 연고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 영광의 상처는 아직도 남아있다. 희미하게나마. 그래도 한땐 이 엄마도 온몸을 던져 너희들을 키웠다고! 알아주든 말든.


내 드라이빙 역사는 짧지만 치열했다. 어느 워킹맘이 그러하지 않을까. 접촉사고를 두어 번 내고 더 이상 운전을 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두려웠다. 미숙한 내 운전으로 남을 해할까 봐. 오랫동안 운전을 접고 있다가 남편의 지인이 몰던 차를 물려받았다. 깨끗하고 아담해서 맘에 들었던 그 애마는 이름도 더 높은 '프라이드'였다. 그래, 뭐, 구식이고 단종되었다 하더라도, 벤츠 부럽지 않다. 난 프라이드 있는 여자니까! 수영갈 때, 마트 장 보러 갈 때, 비 오는 아침 아이 급히 등교시켜 줄 때 쏠쏠하게 애마는 제 몫을 해냈다. 하지만 갈수록 프라이드가 지하 주차장을 고이 지켜야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태생적 뚜벅이 주인을 만나 네가 날개를 펼 수가 없구나, 미안하다. 발 달린 짐승은 걸어야 하고, 바퀴 달린 너도 씽씽 달려야 하는데. 나도 다른 엄마들처럼 맛집, 카페, 쇼핑을 하며 드라이빙을 즐기는 타입이면 좋으련만. 한동네 안에서 학원, 집만을 오가며 주말이면 기껏 버스를 타고 시내 서점 나들이를 좋아하는 이 주인을 만나 운이 없다. 그렇다 해도 내 생활 패턴을 바꿔보고자 하는 마음은 쉽게 일지 않았다.


남편이 작심한 듯 말했다. 세금, 보험료만 나가는 애물단지를 폐차하는 게 어떠냐고. 난 바로 오케이했다. 대화나 토론 대신 싸움으로 일갈하는 우리 사이에 오랜만에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래, 이제 조만간 집순이가 될거고 2년 후엔 전철역 바로 앞으로 이사를 가는 마당에 미안하게 내 애마를 굳이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지. 새 주인에게 가라. 너의 행운을 빌어주마. 이튿날 바로 남편이 들어오며 해외로 수출하는 중고차 업체에 넘겼다고 통보했을 때 한쪽 가슴이 왠지 저릿했다. 이리도 빨리 처분하냐. 남편이 야속했다. 그간 정이 들었구나. 내 손때묻은 오랜 애착 인형이라도 보낸 것 같은 심정이었다.


며칠간 헛헛한 기분이 지나가고, 난 두 다리에 힘을 불끈 주었다. 이젠 리얼 뚜벅이다. 진정 내 두 다리로 세상을 꼿꼿이 활보하리라. 프라이드는 갔지만, 내 프라이드는 사수하리라는 만트라를 되뇌이며 셀프 세뇌중이다. 불현듯 일상을 박차고 핸들에 손을 얹고 유유히 짧거나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여전한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 로망에 운전을 시작했지만 결국 이루어보지 못했다. 얼마 전 지인이 교통사고로 떠나는 걸 본 후, 그 로망은 현실 깊숙이 상처로 다가왔다. 아직도 그의 천진한 미소를 코 앞에서 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 모습 그대로 아이들을 데리고 놀던 박제된 젊음의 시간들이 눈을 감으면 어리는데. 끝내 못 이룬 내 로망보단 이제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안위가 우선이 되었다. 죽음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나이가 되어간다. 죽음에 대한 책을 읽어보고, 사색해 본다. 이별할 시간이 예기치 않음에 슬퍼하며 거기에 매몰되기보단 지금 이 순간 더 집중하며 살아야 한다는 꼰대들의 말씀을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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