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의 추억

자영업자로 살아간다는 것

by 백정순

대표적인 국민 봄노래 <벚꽃엔딩>을 이번 봄엔 듣지 않았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가사보단 가수의 보컬 음색에 반했다. 노래 속 흐드르지며 날리는 벚꽃에 묘한 듯 착착 감기는 창법에 내 귀는 꿀이 뚝뚝 흘렀다. 아울러 첫사랑과 함께 했던 경주 벚꽃놀이의 설렘을 덤으로 리플레이할 수 있었다.


한 해가 갈수록 그만큼의 감성이 야금야금 무뎌져갔고 <벚꽃엔딩>을 듣는 내 귀도 따라서 무뎌져갔다. 아, 저 가수는 봄만 되면 물이 들어오고 노를 젓겠네. 부럽다. 차라리 글을 쓰지 말고, 노래를 부를 걸 그랬나. 이런 낭만과는 거리가 먼 속된 상념들만 들입다 흘러 들어온다.(그래도 글을 써서 다행이다! 소음공해 유발자가 되느니)

지난 달 가족들과 경주 벚꽃 나들이를 했다. 보문호를 남편과 손잡고 산책하며 벚꽃비를 원없이 맞아도 설렘따윈 커녕 심드렁해질 뿐이었다. 하긴 신혼도 아니고 이 나이에 그런 감성을 기대한다는 건 사치겠지. 오히려 한 20년을 더 살면 차라리 그런 떨림이 오려나. 늙으면 아이가 된다고 하잖아. 그러고 보니 저만치 할머니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으신다. 벚꽃을 배경으로 온갖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프로 모델이다. 소녀같은 미소가 벚꽃보다 화사하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에 갈 때였다. 양쪽으로 늘어선 상가에 공실이 하나둘씩 생길 때마다 그래도 처음엔 느긋했다. 불경긴가 하고. 귀갓길마다 상가를 둘러보는 게 어느새 일과가 되어갔다. 그러다 그 날 가슴에 돌덩이가 쿵 박혔다. 서서히 익숙하지 않은 공포가 스멀스멀 등을 타고 올라왔다. 엊그제 오픈하고 영업하던 가게가 오늘 보면 공실이 되고 임대 현수막이 걸려있다. 교습소를 정리하려고 부동산에 내어 놓은 지 반년이 되어가던 차에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았다.


벚꽃이 떨어지듯 하나 하나 폐업을 하는 가게들을 보며 동변상련의 밥알을 씹는다. 이십여 년을 자영업자로 살아온 나는 요즘 생각이 많다. 아홉 개의 생을 산다는 고양이처럼 나 또한 한 생을 접어야 하는 기로에 선 느낌. 아래층 공실처럼 일 년 넘게 교습소가 안 나가면 어떡하나 하는 공포심에 밤잠을 설친다. 남편은 비워놓으면 되지 무슨 걱정이냐고 일갈한다. 엄마를 대물림해 잡다한 걱정과 불안을 만들어내는 내 성벽에 다시 질린다. 체념과 기다림을 미덕으로 삼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자영업자들 힘내라는 구호가 무용한 시대다. 불경기에다 저출산이 동반한 이 상황은 바닥이 불투명한 늪이다. 빛의 동그라미가 보이지 않는 터널이다.


벚꽃이 이리 낭만을 거스르고 섬뜩하게 와 닿는 현실이 서글프다. 바로 옆 동네인 구심을 가면 유령도시를 방불케한다. 건물마다 반은 텅텅 비어가는 상가들. 그토록 활기 넘치고 신명나던 밤거리. 유모차 부대로 흔들대며 어깨춤추던 거리와 공원들. 잠시 졸다가 화들짝 눈 떠보니 어느새 나는 립 반 윙클이 되어있다. 흰 머리와 주름이 덮여가는 얼굴로 날리는 벚꽃을 무심히 바라본다. 계절의 변화는 더 이상 생성이 아닌 생의 공허로 연결된다. 공실 상가 건물주의 고뇌가 가슴으로 들어오며 이젠 생의 실질적인 리듬에 더 민감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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