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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morebi Feb 21. 2019

여행

dreams are everyday

 무작정이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이 끝나고 또다시 지루한 내일을 기다리는 밤이 되었다. 내일도, 모레도 다람쥐 쳇바퀴처럼 같은 곳을 바라보며 제자리를 달릴 것이다. 문득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나마 이곳을 떠나 다시 돌아오면 그때는 쳇바퀴의 방향이 조금은 달라져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누군가'의 감시를 받고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반복된 일을 하는 신세다. 남들과 다르게 자유롭지 못하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 내 몸속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아마 내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시 돌아왔을 때는 쳇바퀴의 방향이 바뀌어져 있는 걸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생각하지 않았는가. 내일이 없어진 나에게 이나저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도망치기로 아니,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여행지는 나도 어딘지 모른다. 다만 일본이라는 나라의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소도시로 갔었다. 그렇다고 그리 촌구석은 아니었다. 공항에 내려 나름 번화의 중심지라는 역에 도착하니 나름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컸다. 지하로 이어진 길을 걷다 보면 큰 백화점과 연결돼있었다. 그 길엔 여러 상점들이 자리해 있었고 식욕을 자극하기도 했었다. 무작정 떠나온 여행이다 보니 급할 것 없었던 나는 천천히 구경을 하며 지하를 빠져나왔고 골목 퉁이에 개구리로 보이는 캐릭터가 마중 나와있는 약국이 보였다. 나는 개구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곳에서 무언가 하나는 꼭 사고 나와야겠다는 심정으로 들어갔다. 그다지 크지 않는 4평 정도 돼 보이는 약국이었다. 천천히 뭐가 있는지 둘러보고 있었지만 사실 그리 크지 않는 약국에서 아프지도 않은데 아이쇼핑을 하는 손님이 어딨을까. 직원이 나를 의심쩍게 봤는지 무엇이 필요하냐며 물었다. 하지만 일본어를 그리 잘하지 않는 나는 그 직원이 하는 말을 어느 정도 이해는 갔지만 지금 내 상황을 뭐라고 말해줘야 될지 잘 몰랐다. 당황한 나는 문득 프로폴리스가 생각났고 그것을 여쭤보았다. 직원은 내가 한국인인걸 눈치챘는지 나에게 천천히 말을 끊어가며 설명해주었고 나는 그런 친절에 감사했다.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환전해오는 걸 깜빡했었다. 다행히 카드가 있긴 했지만 너무 무작정 왔나 싶었다. 문득 누군가가 생각났다. 아마 내가 사라진 걸 보고 날 이곳저곳 찾아다니겠지. 아마 나는 다시 돌아갈 때 공항에서 입국하자마자 잡힐지도 모른다. 그러곤 어디론가 끌려가 더욱더 무료한 벌을 주겠지. 더 큰 쳇바퀴를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난 일본의 어딘지도 모르는 소도시에 있는 약국에서 프로폴리스를 카드 결제하고 있지 않나.


 직원의 친절함은 계속됐었다. 배가 고파 근처에 맛있는 식당이 있냐고 물어보니 자기도 잠시 나가봐야 되는데 가는 길에 알려주겠다며 같이 길을 나섰다. 외국인을 대하는 인심인 건지, 이 나라의 인심인 건지, 이 사람의 인심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친절함은 충분히 위안이 됐다. 그의 나이는 나와 비슷한 또래였고,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성은 '다나카'였던 걸로 기억한다. 얼마나 걸었을까, 좀 멀리 떨어진 사거리에서 경찰들이 무리를 지어 모여있는 걸 발견했다. 뭔가 의심스러웠지만 자연스럽게 지나치면 모를 일이다. 하지만 경찰들이 나를 보더니 잡을 기세로 달려왔다. 다나카는 황급히 나를 데리고 도망치는 길을 알려줬다. 뛰다 지친 우리는 잠시 건물로 들어가 비상구 계단 복도로 도망쳤다. 다나카는 나를 최대한 일본인스럽게 변장해야겠다며 자기가 메고 있던 가방에서 자기의 옷을 꺼내 갈아입으라고 했다. 그냥 평범한 유니클로 옷이었어서 어떤 게 일본스럽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급하기 때문에 그의 말대로 했다. 나는 순간 겁이 났다. ’누군가’에게 들켜 이곳까지 나를 수배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적어도 여행만큼은 반복되는 고민 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도착하고 체 하루도 지나지 않아 도망치는 신세가 됐다. 뭔가 비관적으로 생각했던 미래에 시간이 현재로 데려다줬다고 생각하니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다나카가 옆에서 나를 도와주고 있다. 여러모로 위안이 많이 됐다. 하지만 거기까지. 나는 다나카에게 그의 가방에 들어있던 칼에 찔렸고, 동시에 눈을 떴다.



아무와도 공유할 수 없는 추억이 있다.

그 추억은 기억이 날 때도 있고, 안 날 때도 있지만 불행하게도 오늘은 기억이 났다.

매일 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공유할 수 없는 추억을 쌓아가는 나에게 일말의 희망을 품는 심정으로 글을 쓴다.

우리는 모두 꿈을 꾼다고 믿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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