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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morebi Mar 31. 2019

검은 강

dreams are everyday 2

 그녀를 만났다. 사랑했던 그녀를 다시 만났다. 검은빛으로 물든 강 옆에서.


 잊을 수 없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무엇이든지 잊어버리려 하면 할수록 더 잊히기 힘든 법이다. 관심을 안 가지려 발버둥 쳐도 결국은 관심이 가는 법이다. 허나 이 둘도 아닌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모든 것들에서 도망쳐 잊고 싶었지만 결국은 막다른 각진 모서리 끝에 서있다. 그곳에서 나는 정확히 각을 재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나를 몰아넣은 사람이 다시 손을 내밀면 그 손을 뿌리치기엔 이미 너무 오랜 시간 그 손의 온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거부하기 힘든 아이스크림이다. 그녀는 나에게 여행을 가자고 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잡음이 너무 많다며 조용한 곳을 가고 싶다는 거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랐다. 나는 조용히 그녀가 가는 길을 사선으로 따라다녔다. 기차를 타기도 했고, 버스를 타기도 했다. 우리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착한 곳은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았다. 풍경은 단지 검은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뿐이었다. 바람조차 불지 않아 강의 물결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 강은 어떠한 빛도 비치질 않았고, 물결조차 없기 때문에 암흑 그 자체였다. 내가 모서리 끝으로 도망쳤을 때 만약 발을 헛디뎌 한없이 밑으로 떨어졌다면 이곳에 빠지지 않았을까. 조용히 강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쳐다봤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의 하얀 피부, 나와 헤어지기 전 잘랐던 어깨까지 내려온 단발머리, 적당히 물들어있는 홍조, 오른쪽 목 옆에 보이는 조그마한 점. 나는 그녀의 얼굴부터 밑으로 조금씩 시선을 내리며 바라보았다. 내가 알고 있는 그녀의 그때와 지금은 신기할 정도로 똑같았다. 달라진 거라곤 한결같이 같은 표정이었다. 나에게서, 혹은 이 세상에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다시는 사랑하지 못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검은 강처럼 보였다. 마치 죽어있는 것처럼. 아니면 죽으려 하는 사람처럼. 어째서 그녀는 이곳에 오자고 했을까. 나는 왜 그녀를 따라왔을까. 그녀는 왜 나를 각이 정확한 모서리에 몰아넣었을까.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긴 한 걸까. 언제나 나와 그녀의 끝은 항상 흐렸다.



 원하지 않아도 흘러가는 대로 살수 밖에 없을 때가 있다. 시간에 흘러갈 때도 있고, 사랑 따라 흘러갈 때도 있다. 나의 꿈의 끝은 항상 흐렸다. 어째서 검은 강이었는지, 왜 그녀는 나를 모서리로 가두어놨는지, 어떻게 꿈이 시작되었는지……. 나에게 자유를 준 그녀는 또다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자연스레 검은 강을 향해 흘러갈 것이다. 사랑 따라 흘러가는 것이 아닌 사랑으로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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