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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morebi Nov 13. 2020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검은 숲


 이 글은 누군가의 권유로 쓰게 됐습니다.


 이 전에도 말했지만 그 사람을 위한 글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쓰는 글입니다.


 길을 잃었다. 하긴 길을 잃을 만도 했다. 시계를 가지고 있지 않는다면 지금 오전과 오후의 경계를 파악하기 힘들 것이다. 멀리서 이 숲을 보기만 하더라도 길을 잃은 느낌이 들것이다. 이 숲의 크기를 가늠하려고 한다면 아니, 꼭 가늠해봤으면 좋겠다. 깊은 생각에 빠지고 싶다면 말이다. 하지만 다시 나올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생각보다 빨리 해가 떨어지는 기분이 든다. 숲에 처음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앞으로 4시간 정도는 거뜬히 해가 떠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점점 오후의 햇살은 뜨겁지도 않고, 기운도 없어 보였다. 이 숲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 검은 숲은 외부의 출입자를 경계하고 숲의 일부가 되기 전까지 체내의 기운을 모조리 흡수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수천 년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혹은 무언가를 간절히 지키기 위해 외부는 차단하고 숲에 동화시키는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 이 숲에 들어오게 됐는지 기억이 안 난다. 처음엔 오는 길마다 나무를 긁어 표시를 해놓고 해가 떠있는 방향을 확인하며 지나온 길을 기억했지만 이제는 어디가 서쪽인지 가늠할 수가 없게 됐다. 잠시 겁에 질리기 시작하면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고 목은 굳은 채 눈동자만 굴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순간 바람이 귓등을 스치면 그제야 한 발이 떼지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사실 앞이 어딘지 모르겠다. 알 수 없는 미로 같은 이 검은 숲에 갇혀 발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걷다가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그래도 여기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얼른 해가 떨어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걸어야 한다. 해가 떨어지면 더 이상 걷는 것도 불가능하다. 최소한 몸을 숨길 장소라도 찾아야 한다. 멀리서 이 숲을 바라봤을 때 내가 대강 어느 쪽에 위치해 있을까 상상을 해본다. 전혀 감이 안 잡힌다. 아무리 멀리서 보고, 자세히 보려 해도 길을 잃은 느낌은 여전하다. 마치 주위의 풀과 줄기들이 점점 내 몸을 조이기 위해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나는 다시 한번 지금 서있는 위치의 나무에 표시를 해놓고 500걸음 걷기로 한다. 그렇게 500걸음마다 보이는 나무에 위치를 표시한다. 이제 해가 곧 떨어진다. 벌써 새들은 둥지로 날아가고 있고, 나뭇잎 소리는 점점 고요하고 싸늘한 소리를 낸다. 얼마나 걸었을까. 아무리 걸어도 표시했던 나무는 보이지 않고 더 이상 숨을 곳마저 찾을 체력이 방전되고 있다. 오늘 밤을 버틸 수 있을까. 야생동물에게 잡아 먹힐지도 모르고 추위와 어둠에 둘러싸여 불치병이 생길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낮에보다 두려움은 덜 해졌다. 아마 현실을 받아들인지도 모른다. 이대로 검은 숲에 잠겨 죽겠구나. 결국 밤이 찾아왔고 나는 낮에 보던 그나마 큰 바위 옆에서 서쪽의 바람만이라도 막기로 했다. 처음엔 이 숲의 어둠에 사로잡혀 어디서 들려오는지도 모르는 소리만 들렸었다. 그 소리는 냉기가 가득하고 따스함이라고는 전혀 없고 화음이 없는 매정한 소리였다. 그러다 어둠이 눈에 익기 시작하고 내 손이 비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달을 찾으려 했지만 달빛마저 이 숲은 경계하고 있는 눈치다. 어둠이 눈에 익기 시작했지만 나는 되려 다시 눈을 감았다. 오랜 시간 걸어서 피곤하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눈에 보이기 싫었다. 어쩌면 나는 어둠이 체질에 맞는지도 모른다. 눈을 감고 내가 이 숲에 오기 전을 떠올렸다. 나는 언덕 멀리서 이 숲을 내다봤다. 그곳은 유일하게 검은 숲을 위에서 내다볼 수 있는 곳이다. 위에서 내다본 검은 숲은 마치 내가 꿈에서 본 듯했고, 이 장면을 또 어디선가 내가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는 나를 걷게 해 주고, 외부의 눈빛만 봐도 흔들리는 나를 보호해주고, 눈을 감지 못하는 나에게 꿈이라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검은 숲에서 빠져나올 생각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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