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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morebi Nov 10. 2020

미장센(mise en scene)

treatment


 이 글은 누군가의 권유로 쓰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을 위한 글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쓰는 글입니다.


 여러분은 살면서 한 번도 안 아파본 적이 있나요. 고통이란 걸 느껴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지 않나요. 외적이던지, 내면이던지, 꿈에서라던지 한 번은 아픔을 겪어봤을 것입니다. 당신이 ‘아몬드’가 아니라면 말이죠.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는 그저 아몬드를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어렸을 땐 특별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가족의 사랑을 배웠고, 친구들의 어깨를 두드려봤고, 사랑하는 사람의 뒷모습을 더 이상 못 보게 되면서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게 없는 '보통의 존재'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하게 되는 메타포가 생겼습니다. “더 이상 아프기 힘들다.” 신기하게도 점점 아프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밤을 지새워도 일찍 잤다고 말할 수 있게 됐고, 식사를 안 해도 배부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새벽마다 꿈에 잠겨도 현실에 있는 척도 가능합니다. 이대로 불에 타 죽어도 이 세상에 재 하나 남기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아몬드’가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파도 아무렇지 않아.”가 맞는 거 같습니다. 아픈 척하기도 싫고, 아픈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나 자신에 너무 솔직했던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러다 보니 힘들 때 나 자신에게도 더 이상 털어놓을게 없어진 겁니다. 스스로 대화가 필요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솔직했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이 글은 얼마나 솔직할지 의문이 듭니다. 나도 모르는 솔직함을 세상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지금 창 밖엔 노을이 지고 있지만 아무런 감흥이 없습니다. 물론 노을을 봤다고 해서 꼭 무언가를 느낄 필요는 없지만 그냥 아무렇지 않습니다. 또 솔직해졌네요. 정리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겠습니다. 정리를 하는 이유는 어질러지기 전으로 되돌리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새롭게 변화하고 싶기 때문에 정리를 하는 겁니다. 저는 스스로 정체되어있는 기분이 들 때 어질러진 것들 사이에 잠시 누워있습니다. 정리하기 전, 잠시 동안만이라도 정을 주고 필요 없는 것들은 과감히 버릴 용기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정리를 하다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니고 있긴 무겁고 버리자니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은. 저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기 때문에 그동안 그럴 때마다 버렸었습니다. 근데 이번만은 다르네요. 다른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아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질러진 것들 사이에서요. 눈을 감고 생각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몇 달 전, 몇 주전, 며칠 전 일들이 마치 어제 일어났던 일 같습니다. 생생하다면 생생한 걸까요. 마냥 기억이란 게 좋은 일은 아닌 거 같습니다. 기억과 추억은 다른 단어입니다. 그동안 같다고 생각했던 두 단어가 이렇게 이질감이 들기 시작하니 눈물이 납니다. 아픕니다. 머리가 아프고, 눈이 시리고, 숨이 안 쉬어집니다. 이 모든 것들을 버리고 싶습니다. 재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싶습니다. 어디까지가 솔직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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