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omorebi Nov 10. 2020

내가 있어야 할 곳

remove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내가 없으면 그곳은 내가 있으면 안 되는 곳일까, 잊어야 하는 곳일까.”


 몸에 붙어있는 건 옷이나 액세서리, 핸드폰뿐만이 아니다. 내가 있는 주위의 공기, 가족, 친구, SNS의 잘 알지도 모르는 사람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잠시 나뭇가지 위에서 쉬고 있는 참새들처럼 스쳐 지나가도 나의 주위에 함께하고 있다. 지금 내가 있는 공간이 내가 있어야 하는 곳 인지, 잠시 머물러도 되는지, 오면 안 되는 곳인지 그걸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대게는 세상이 흘러가듯 흐르는 물줄기에 몸을 담그고 깊은 생각을 안 하도록 다수의 흐름에 맡긴다. 출입통제 지역에는 들어가지 않고, 우유를 사기 위해 마트에 가고, 피곤한 몸을 씻고 잠을 자기 위해 집으로 간다.


 “그렇지만 나의 집에서 샤워를 하다가 문득 내가 이 집에서 있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통보받으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쫓겨나야 한다면 보통 사람들은 순순히 나가줄까. 자신을 납득시킬만한 이유를 찾으려 할 것이고 납득이 안됐다면 반대를 무릅쓸 것이다. 분명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 내가 없는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상상하니 물을 마시고 마셔도 목이 말라온다.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오랜 시간을 비우다 보면 내가 있고 싶은 곳으로 생각이 물들어 버린다. 그 안에는 내가 없어도 원래 잘 돌아갔던 곳이었을까. 나 이전에 누군가 사람들이 머물다 갔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잠시 머물러야 할 이유는 없다. 그동안 나를 편안하게 해주고 재워줬던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나가야 한다면 나는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할 것이다. 아니, 지켜줄 것이다. 그곳이 나에게 소리칠 때까지. 하지만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나에게 소리친다. 아무 소리 없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있었던 곳이 된다면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딜까."


 이대로 떠돌아다녀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언젠가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맴돌 수 있다. 낮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대신 따스한 햇살이 비춰주고, 밤에는 싸늘한 바람이 불지만 어둠이 나를 가려준다. 버틴다는 것은 무언가를 원할 때 하는 것이다. 견딘다는 것은 나를 시험하고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뜻을 해석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묵묵히 걸을 것이다. 어쩌면 나를 위해서 잊어야 하는 곳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잊을 수 없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난 돌아갈 것이다. 이젠 돌아가고 싶다.


 거리에 나와보니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잊고 싶지 않은 있고 싶은 곳이 돼버렸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은 여기에 빠져야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