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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morebi Jan 26. 2021

Solanine

ソラニン


 감자의 순에 들어 있는 독 성분. 영어로는 solanine, 한글로는 솔라닌이지만 소라닌이라고 부르겠다.


 '소라닌'이라는 영화가 있다. 원작은 일본 만화이지만 나는 4년 전쯤 영화로 봤다. 그 이후로 뭔가 인생에 힘을 내야 할 때나 해답을 찾고 싶을 때마다 이 영화를 본다. 영화를 보고 나면 어느 정도 해답을 찾아주는 것 같았다. 몇 번을 봐도 내용은 똑같지만 느껴지는 감정이 달라진다. 지금까지 얼마나 봤는지는 횟수로 기억은 안 난다. 적어도 '나 홀로 집에'만큼은 보지 않았을까. 나에게 이런 영화가 몇 개 있다. 하지만 지금 소라닌에 대해서 쓰는 이유는 어떤 다른 영화와는 달리 새로운 깨달음을 찾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전반적인 스포는 하지 않겠다. 기회가 된다면 봤으면 좋겠다. 봤다고 하더라도 또 봤으면 좋겠다.


 우선 음악을 주제로 다루는 영화이다. 그렇지만 어떤 유명한 음악영화를 봤어도 이런 감흥은 못 받았다. 소라닌은 단순히 음악영화가 아닌 음악을 하는 사람의 인생에 대한 영화라고 할까. 나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다. 음악이라는 꿈을 갖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제대로 시작한 건 고등학생 2학년 가을 즘이었지만 그전부터 조금씩 열망하고 상상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듣고 좋아해 주고 공감해주는 상상을 말이다. 우연이었다. 노래를 전공으로 대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한 건 음악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할 때였다. 하지만 나의 꿈은 노래가 아닌 음악이었고, 더 나아가 음악이 아닌 예술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기엔 현실적으로 타협이 필요했고 노래를 시작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시간이 지나고 지금은 음악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예술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알면 알수록 예술이라는 프레임을 정하기란 어렵다는 걸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도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밴드를 하는 주인공이지만 현실에 타협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인연이 닿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자신을 아껴주는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하고 있다. 주인공 스스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음악을 만들어 데모를 기획사에 보내고 그렇게 연락이 닿은 소속사와 대중성과 정체성이라는 점에서 현실을 깨닫고 음악을 그만두게 된다. 어떤 인연을 만나 살아갈지는 모르지만 주인공이 선택했건 안 했건 나타나는 일들을 받아들이고 해결하려는 모습이 정체돼버린 나에게 마치 해답을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인연을 믿는 사람이다. 나의 직업과 꿈도 인연이 되고 나를 잠깐 스쳐갔던 사람이나 언제나 옆에 있어주는 가족도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도 마찬가지고 나와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 가지. 죽음도 인연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꿈이 바뀌는 것이 아닌 사라지는 것. 사람이 떠나는 것이 아닌 죽는 것. 이런 것까지 인연이라고 하고 싶지 않다. 꿈이 없어지는 인생, 나의 인연이 사라지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문득 생각했다. 그냥 살아가는 것 그거면 되는 거 아닌가. 좀 더 강하고 단단한 인생을 살아가며 꿈을 꾸고 사람들을 아끼며 살아가고 싶다면 말이다. 나에게서 자라나는 독을 잘라버리고 조금 더 내 삶을 사랑하는 것. 영화 '소라닌'을 보고 깨달았다. 예를 들어 느긋한 행복이 내 인생에 계속된다면 나쁜 씨앗이 싹을 틔워 이별을 맞게 되는 일. 그것만큼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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