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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morebi Feb 19. 2022

양을 찾으러

find me


 만약에 목적 없는 여행을 떠나야 한다면, 자의적이던 타의적이던 일상의 변화를 줘야 한다면 잃어버리고 살았던 무언가를 찾는 목적을 만들고 싶다. 그것은 자의적이었고 분명한 목적을 가졌지만 구체화할 수 없는 흐릿함이었다. 나는 그저 웃는 양을 보고 싶었다.


 웃고 있는 표정을 짓는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사람이 혼자 있을 때 미디어나 문자가 적힌 글을 보지 않고 웃을 수 있는 경우가 대게 얼마나 있을까. 상상력이나 겪었던 기억들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간접적인 접촉을 하지 않고 오로지 ‘나’라는 사람만 존재할 때 웃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생각해봤다. 맛있는 음식, 좋은 향, 아름다운 광경, 성, 지루할 만큼의 수면 등 오감을 자극하는 일이 더 이상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느낄 정도의 상태가 됐다면 나는 꿈이던 현실이던 누구를 만나더라도 웃지 않는 존재가 되진 않을까 생각해 봤다. 누군가를 위한, 공기의 흐름을 흐트리고 싶지 않은 반강제적인 웃음이 아닌 사람의 순수한 웃음은 살면서 많이 겪지 못하는 부분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더 이상 이 방안에 혼자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목적 없는 여행을 하기 위해 간단한 생필품과 아직은 쌀쌀한 날씨에 맞는 옷을 챙겨 입고 웃음이 없는 공기가 가득한 이 방에서 마지막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나왔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고 그대로 차에 시동을 걸어 남쪽으로 향했다.


 남쪽으로 떠난 이유는 없었다. 사실 거의 모든 게 즉흥이었다고 해도 좋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서쪽으로 가기는 싫었다. 집에서 나온 시간도 즉흥이었었고 마침 퇴근시간이라 러시아워에 갇혀버려 풍경의 변화가 무딜 만큼의 속도로 시내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조급함과 답답함은 없었고 단지 지루함이 조금 있었다. 차에 있을 때만큼은 음악이나 라디오를 듣지도 않았고 딱히 내키지도 않았다. 자연스레 나는 웃음에 대해 생각을 이어나가게 됐다. 나는 집 밖으로 나온 지 한 시간 가량 지났지만 아직 한 번도 웃진 않았다. 사람들이 타있는 차들이 거리에 즐비해있고 인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지만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풍경에 지나지 않았고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노을이 오히려 풍경답지 않는 풍경으로 보였다. 나는 웃음이 없어졌다. 아마 작년 이맘때쯤이었으니 대략 일 년정도 된 거 같다. 그 당시의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예민하게 의식했고 그 사람들의 마음을 읽었다는 착각에 빠져 만족하며 보이지 않는 웃음을 느끼며 지냈다. 그런 습관은 친구관계나 연애에도 이어졌고 몇 번의 반복 과정 결과 끝이 안 좋다는 걸 알게 됐고 나를 잃어버린 듯한 마음에 웃음을 잃게 됐다. 그래도 불행인지 다행인지 영원히 혼자가 아닌 좋은 친구들이 내 곁에 있어줬지만 본질의 문제는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나는 무덤덤하게 웃음을 잃게 됐고, 그 무덤덤함은 자연스레 내 방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일 년이란 시간이 흘러 지금 나는 무작정 그 방에서 떠나 정체된 도로 한복판에 있다.


 마지막으로 봤던 웃음을 떠올렸다. 평범한 웃음은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이상하다고 느끼진 않았다.    눈이 오는  직장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직장 근처의  서점에 들렀다. 마땅히 읽고 싶은 책은 없었지만  당시 읽던 책이 거의  읽고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서점으로 갔다. 마찬가지로 아무 생각 없이 잡지 코너로 갔고 거기서 유명하진 않아 보이는 잡지를 대충 훑으며 책장을 넘기다가 웃고 있는 양의 사진을 봤다. 코믹 잡지도 아니었고 유머가 들어있는 설명도 없는 글이 첨부되어있는 사진이었지만 나는  양을 보고 나도 덩달아 웃었다. 그때의 나는 주위의 공기를 의식하던 때라 티가 나게 웃진 않았지만 속으로 엄청 끅끅거리며 혀에 힘을 주어 웃음을 참으며 사진을 봤다. 아마 집에서 혼자  그림을 봤더라면 목에 피가 나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정도로 웃었을 것이다. 양의 웃음은 어딘가 오묘했고 웃음이 아닐지도 모를 만큼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하고 찍혔던 사진기를 의식하고 바라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묘한 사진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단지 하나의 해프닝에 지니지 않는, 지금 생각하면 제정신이 아닐 만큼의 불안한 자아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력함을 가져왔고 끝내 웃음을 잃게 만든 것이다. 나는 목적 없는 도로에서 마침 길이 보이기 시작했고 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노을은 수평선 밑으로 가라앉었고 주위의 사람들도 점점 보이지 않게 됐다. 왠지 동쪽으로 가다 보면  양을 다시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또한 즉흥적이었고 단서나 이유 따위는 없었다. 나는 급하게 경로를 남쪽에서 동쪽으로 꺾었다. 이 모든 게 무언가를 위한 일 같았다. 동쪽으로 이동하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피곤함에 기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두 시간 정도 운전을 했을까 하염없이 동쪽으로 이동하다 보니 도로의 가로등이 반딧불처럼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이틀간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연말이라 회사에 할 일이 많았다. 이렇게 갑자기 여행을 가게 될 줄은 몰랐으니 평소였으면 오늘 같은 주말엔 방에서 빈 캔맥주를 나열해 놓고 누워서 잠만 자거나 TV만 보고 있었을 거다. 원래 계획을 하며 움직이는 성격은 아니지만 이렇게 무턱대고 나올 줄은 스스로도 몰랐다. 알 수 없는 무덤덤함이 나도 모르게 두려워 밖으로 도망쳤으리라, 혹은 정말 끝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거나. 잠시 쉬었다 가야겠단 생각이 들어 10km만 달리면 나오는 휴게소에 잠시 멈춰 화장실을 들르고 편의점에서 따듯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유통기한도 확인 안 한 햄 샌드위치 하나를 사고 차에서 먹었다. 졸음이 조금 달아나는 듯했지만 다시금 머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동쪽으로 얼마나 가야 할까. 내가 과연 목적지를 찾을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내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 샌드위치를 다 먹을 때쯤엔 생각의 처음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계획이 없었던 적도 없었뿐 더러 계획이 있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무덤덤함이 집에서 나와 이 차 안까지 쫓아온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3시간 정도 잠들어버렸다.


 눈을 떠보니 창밖은 아직 어둡긴 하지만 곧 날이 밝을 것 같은 푸른 어둠이 깔려있었다. 날이 꽤 쌀쌀해 나는 여분으로 가저온 패딩 외투를 걸쳐 입고 휴게소 화장실에 들러 양치를 간단히 하고 눈곱을 떼고 머리에 물기를 묻히고 편의점에 들러 따듯한 커피를 사들고 다시 차에 들어왔다. 잠깐 잠을 자서 그런지 확실히 아까보다 머리가 맑아진 기분이었다. 아니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아무것도 아닌 일도 생각이 깊어지면 없던 무게가 생기니 가끔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행동을 해보자. 조금은 식은 커피를 얼른 여러 번 나눠 다 마시고 서둘러 다시 동쪽으로 출발했다.


 어디선가 바닷바람이 불었다. 바람의 냄새는 짠내가 났고 어딘가 꿉꿉하면서 습기가 가득한 따듯한 바람이었다. 지금 계절은 겨울인데 히터가 아닌 바닷바람의 따듯함이 귀에 울리고 얼굴에 닿을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바람 부는 방향을 보아선 아마 동쪽에 보이는 언덕 너머에 바다가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왔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들판 한복판에 덩그러니 서있다. 그리고 동쪽으로 가는 길에 오두막이 하나 있는데 그 옆엔 나무 울타리로 보이는 가벽이 설치돼있고 점점 다가가 보니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표정을 지은 털이 깎인 양이 한 마리 서있다. 나에게 감정이 있는 것처럼 양의 시선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양을 나도 경계하며 가까이 다가갔다. 양과 나 사이엔 따듯한 바닷바람이 가로질러 가고 있었고 나의 한쪽 뺨만이 따듯해져 묘한 기분을 이어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양은 고개를 살짝 기울며 눈썹을 추켜올렸다. 가까이서 봐도 양이 아니라 사람과 마주한 느낌이었다. 따듯한 바닷바람이 들판을 가로지르는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양의 몸집은 보통의 양보다 덩치가 더 있었고 털은 민지 얼마 안돼 보일 만큼 앙상하게 깎여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양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양이란 사실은 변함없었다. 내가 가까이 마주할 동안 양은 울음소리 하나 없이 눈만 깜빡이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왠지 말을 한다면 사람의 언어를 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끝까지 양의 침묵은 계속되었고 그 기괴하고 낯선 분위기가 바닷바람을 타고 흘러갔다. 양이 웃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행복하기 위해 웃는 웃음이 아닌 더 이상의 행복은 없을 것 같은 웃음을 보고 싶었다. 나는 그걸 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무턱대고 무기력한 방에서 뛰쳐나오듯 이곳까지 왔다. 하지만 끝내 양의 웃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러기에 그 양의 표정이 더 기억에 남는다. 행복을 바라는 마지막의 모습이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는다. 행복을 바란다는 건 사치일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행복은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웃는다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불가능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꿈을 꾸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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