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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에 존재하는것인가, 존재하기에 생각하는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2

by 순코딩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코기토 에르고 숨)

나같이 철학을 개뿔 몰라도 살면서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말이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17세기 프랑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르네 데카르트가 했던 말이다.

이 말을 본 순간 식상함을 느끼는 분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여기저기서 너무 많이 인용되고 있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 말에 대해 그렇게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한 유명한 철학자가 당시 사람들에게 생각 좀 하고 살라고 던진 한마디가

오늘날 세계적인 명언이 됐으리라 생각했을 뿐이다.


데카르트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저 말을 왜 했는지 그 안에 숨은 의도와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솔직히 깊게 알고 싶지도 않다.

나, 창업 도전부터 현재 공장에서 생산직 노동자의 삶을 살기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좌절감과 상실감을 느꼈던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서인지 요즘 부쩍 생각이 많아졌고, 생각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내가 처한 처지 및 상황은 과거 내가 했던 모든 선택의 결과물이고 내가 했던 모든 선택은 내가 살면서 학습과 경험을 통해 형성된 내 생각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전되어 왔는지 그리고 생각이라는 본질은 무엇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이 실마리를 다른 사람의 경험과 추측이 아닌 내가 살아온 30년 인생 경험 안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볼 생각이다. 그리고 현대 과학에서 밝혀진 사실을 기반으로 솔직하고 지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을 한번 끄적거려 보겠다.


데카르트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을 하는 걸까?


나는 둘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가 태어나는 것을 선택할 수 없었다.

어떤 나라에서 어떤 환경에서 어떤 가정환경에서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날지 선택할 수 없었으며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지 말지 선택할 수도 없었다.

자연의 순리대로 자연선택을 받아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부모나 가족의 보호를 받으며 교육을 받고 언어를 배우고 다양한 정보를 학습하면서 점점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 부모 곁을 떠나 자신의 선택에 따라 사회를 경험하고 더 많은 세상과 지식을 학습하며 나라는 생각과 사고는 점점 확장하게 되고 ‘나’라는 정체성이 견고하고 형성되는 과정을 밟는다. 이것이 생각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우리는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단순 자연의 선택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인 걸까?

만약 누군가 내가 누구인지 한번 말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그냥 ‘자연의 선택에 의해 1991년에 태어나 2020년을 살고 있는 올해로 30살이 된 안종순이라고 합니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내 성격은 어떻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이며 취미와 특기는 이것이고 이걸 잘하고 저걸 싫어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에 대해 서로 다르게 표현할 것이다.

자신을 규정하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 생각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보고 배우고 느끼고 경험하고 학습한 정보를 기반으로 새롭게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나’라는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한번 극단적인 예를 한번 들어보겠다.

만약 2020년에 정말 모든 게 똑같은 쌍둥이가 태어난다고 가정해보자.

한 명은 서울의 한 평범한 가정집에서 유년기를 보내게 하고,

한 명은 무인도에서 홀로 유년기를 보내게 해서 운 좋게 무인도에서 살아남았다고 가정했을 때 20년 뒤의 두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전자는 분명 한국어라는 언어를 배우고 정규 교육을 받고 대학을 가고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사용할 줄 알 것이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사는 평범한 성인으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옷을 걸치지 않은 채 숲 속을 네발로 기어 다니며 먹이를 잡아먹고 상황에 따른 기본적인 울음소리만 낼뿐 의사소통이 불가능 한 인간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거의 침팬지와 같은 수준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경우 전자와 후자 모두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자신이 존재한다는 인식 자체가 가능할까?


자신의 존재를 생각하고 인식할 언어조차 배우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신이 누구인지 규정할 수 있을까? 언어는 가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상상력을 제한한다고도 말하기도 하지만 언어 자체가 없다면 무엇으로 우리는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는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이 생각은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환경과 사회 안에서 언어를 배우고,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많은 경험을 통해 학습된 정보를 토대로 학습된 정보는 생각을 통해 재구성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고 존재를 규정하게 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말도 맞는 말인 것 같다.

무엇이 옳고 틀리든 간에 어쨌든 나라는 존재를 생각하게 하는 그리고 생각이라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생각이란 놈의 본질은 무엇이고 만들어지게 되는 과정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직은 미지의 영역이긴 하지만 최근 과학기술의 발달로 많은 것들이 밝혀지고 있는 인간의 뇌를 탐구하는 ‘뇌과학’을 통해 생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았다.

몇몇 사람들이 생각이라고 하면 마음 그리고 정신과 같이 영적이고 추상적인 개념과 많이들 대입하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추상적인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단순하게 접근하여 점점 디테일을 만들어가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이번에도 쉽게 접근하기 위해 누구나 아는 질문을 던졌다.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가?


딱 까놓고 말해서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가?라고 물어봤을 때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대부분 뇌에 대해서 아는 게 많이 없지만 그래도 우리의 본능과 직감은 알고 있다.

우리의 생각은 뇌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냥 당연하게 여러분도 ‘뇌’에서 나오겠지 라고 답할 것이라고 믿는다.


뇌는 1000억 개의 신경세포 뉴런으로 이루어져 있다.

뇌는 단순 우리 머릿속 두개골 안에 있는 1.5kg짜리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뇌는 1000억 개의 신경세포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신경세포를 ‘뉴런’이라고 부른다.

이 신경세포들의 전기적/화학적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는 학습하고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뇌는 1000억 개의 신경세포(뉴런)로 이루어져 있다 - 출처 : 픽사 베이(pixabay.com)



우리가 살면서 학습하고 경험하게 되는 정보는 오감을 통해서 뇌로 전달된다.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들이 무언가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보가 뇌로 들어오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무런 데이터도 없이 어떻게 정보를 처리하겠는가. 뇌에서 처리하는 정보는 모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눈, 피부, 코, 입, 귀 등의 오감을 통해서 외부 자극을 감지하여 전기적 신호로 바꾸어 뇌로 보내지게 되며 뇌는 오감을 통해서 전달받은 전기신호를 처리하게 되는 것이다.

시각정보는 눈으로, 촉각 정보는 피부로, 후각 정보는 코로, 미각 정보는 혀로, 청각 정보는 귀로 감지하는 것이다.

우리의 오감을 통해 외부 정보를 수집하여 뇌로 전달하게 된다.


오감은 마치 외부의 물리적인 정보를 전기적 신호로 바꾸어 컴퓨터로 보내주는 센서와 같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체온계를 많이 봤을 것이다. 체온계도 사람의 온도를 감지하여 이를 전기적 신호로 변환하여 기계에 보내고 몇 도인지 표출하는 것일 뿐이다. 이처럼 인간의 정보처리와 기계의 정보처리 과정은 유사하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의 오감은 끊임없이 외부 정보를 수집하여 뇌로 보낸다. 그리고 각 정보의 특성(시각, 후각, 미각, 청각, 촉각)에 따라 뇌의 각 다른 부위의 뉴런에 의해 처리된다.

예를 들어 본다는 것은 어떤 물체에 빛이 반사되어 우리 눈의 망막으로 들어와 상이 맺히게 되고 전기적 신호로 변환되어 시각정보를 담당하는 뇌의 후두엽으로 전달되어 처리되게 된다.


학습된 외부 정보가 생각과 개념을 형성하게 되는 과정

오감을 통해 수집된 외부정보는 정보의 특성에 따라 뇌의 각 부위에 있는 뉴런에 의해 처리된다.

하지만 신기한 것이 각 부위 별로 다른 정보가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복잡한 생각과 개념들을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치느님은 눈을 감고 냄새만 맡아도 치느님이라고 알 수 있고, 맛만 보아도 치느님이라고 알 수 있고, 먹어만 보아도 치느님이라 알 수 있고, 심지어 만져만 보아도 치느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미각을 처리하는 신경세포는 각각 따로 노는데 어떻게 치느님이라는 정체성과 개념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을까?

여기서 뇌의 핵심 기능이 나온다.

바로 뇌신경세포 간 소통 즉, 연결(Connection)이 키포인트다.

신경세포는 전기신호가 전달되면 활성화가 되면서 정보를 처리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방안에 스위치를 켜는 것과 같다. 그리고 다른 신경세포와 연결되어 소통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신경세포끼리 거대한 연결망이 형성되어 정보교류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생각 또는 개념 등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단순 정보의 조각을 가진 신경세포가 천 개, 만개가 연결되어 정보가 처리되면서 그 정보는 융합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을 통해 복잡한 개념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신경세포 간 연결하는 지점을 ‘시냅스’라고 부르고 하나의 신경세포는 수천~수십만 개의 다른 신경세포들과 연결을 맺는다고 한다.


이 말은 1000억 개의 신경세포로 이루어진 우리 뇌는 100조, 1000조 개나 되는 시냅스 즉, 신경세 포간 거대한 연결망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뇌의 핵심은 신경세포간 거대 연결망(시냅스) 형성에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경세포끼리 연결되는 지점을 시냅스라고 부르는데 이 시냅스는 학습을 반복적으로 하면 할수록 더욱 견고하고 연결성이 강해진다고 한다.


학습 여부에 따라 신경세포간 연결성은 강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한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것을 꾸준히 학습하면 학습할수록 더 잘 기억하게 되고 더 학습 속도가 빨라지는 이유이다.

그리고 가끔 지인들과 대화를 나눌 때 영화 제목이나 노래 제목이 생각 안 날 때 있지 않는가? 머리를 싸매가 계속 생각하다가 갑자기 문뜩! 기억나는 순간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이는 오랜 기간 동안 학습을 멈추고 잊고 있어서 뉴런의 연결망이 약해지고 스위치가 꺼져있다가 여러분이 계속 생각해내려고 하는 그 행위가 해당 기억의 조각을 갖고 있던 신경세포들에게 자극을 줘서 갑자기 꺼져있던 신경세포의 스위치가 켜지게 되면서 기억이 되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뇌가 생각을 디자인하게 되는 ‘핵심’ 기능이다.


외부 정보를 학습하고 처리하는 뇌의 신경세포들의 거대한 연결망을 통해 서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생각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인터넷과 같다.


우리 뇌가 만들어내는 생각은 마치 모든 컴퓨터가 거대 인터넷 망을 통해 연결되어 정보의 바다를 만들어내는 것과 유사하다.


이 세상의 대부분의 정보를 담고 있는 인터넷의 경우

컴퓨터끼리 거대한 인터넷 망을 깔아서 서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지식이 정보가 되고 그 정보들이 계속 융합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끊임없이 창조되는 것과 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의 생각과 정체성 형성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습득하는 정보가 어떤 것이냐는 것이다.

우리 뇌는 스스로 어떤 정보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다만 오감을 의존하여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기반으로 재구성해 나갈 뿐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는 정보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 뇌는 그것을 학습할 것이고 그에 맞는 개념과 생각을 만들어낼 것이다.

신경세포간 전기적 신호를 통해 정보를 처리할 때 신경화학물질을 전달하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의 감정과 관련되어 있다.

쉽게 말해 나쁜 외부 정보를 학습하면 학습할수록 우리 뇌는 그에 맞는 나쁜 감정의 신경화학물질을 만들어내고 이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우리 몸의 건강과 아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래서 평소에 좋은 생각과 감정을 유발하는 것을 보고, 배우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우리 감정과 생각 그리고 몸을 건강하게 바꾸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뇌과학을 통해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은 우리가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운 외부 정보를 오감을 통해 뇌로 전달되어 정보를 처리하는 신경세포끼리 소통하면서 새로운 정보나 개념 그리고 생각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생각은 우리의 경험적 범주 내에서 국한된다.


세상을 바꾼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발명품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성인들의 지혜도, 위대한 과학 이론도 모두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경험적 범주 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스티브잡스가 전화기와 무선통신이 없던 시대에 태어났다면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었을까?

아인슈타인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위대한 이론을 생각해낼 수 있었을까?

모든 창조적인 생각과 아이디어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생각은 우리가 살아온 경험적 범주 내에 국한된다. (이미지 출처 - 픽사 베이 pixabay.com)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신’만이 가능한 일이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 인간은 유에서 새로운 유를 창조해 나아갈 뿐이다.


과거 조상님들이 남겨놓은 지적 유산과 지혜를 우리는 학습하고 다른 것과 융합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창조물이 태어나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계속 변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변해갈 것이다.

우리의 생각도 마찬가지로 계속 변한다. 우리가 어떤 것을 경험하고 학습하느냐에 따라 우리 뇌는 항상 변할 준비가 되어있다.

1000억 개의 신경세포들이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학습할 준비가 되어있고 신경세포끼리 거대한 연결망을 형성하여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낼 준비가 이미 되어있다. 다만 우리가 우리의 뇌에게 어떤 재료를 던져주느냐가 관건이다.

만약 나무를 주고 집을 지으라고 하면 나무집이 지어질 것이고,

벽돌을 주면 벽돌집이 될 것이고,

진흙을 주면 흙으로 만들어진 집이 완성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이 우리가 학습하고 경험하는 경험적 범주 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인생은 불공평할 수밖에 없다.


맞다. 인생은 불공평하다.


부유하고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도 있고

가난하고 폭력을 일삼는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심지어 부모 얼굴도 모르고 다른 사람에게 길러져 평생 남의 눈치 보고 살아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이 과연 같은 것을 보고 배우고 생각할 수 있을까?

좋은 영향을 받고 자란 이들은 좋고 긍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고 나쁜 영향을 받고 자란 이들은 나쁘고 부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은 건 당연한 결과이다.

이러한 이유로 어떤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로 그 사람의 출신과 배경 그리고 집안 내력을 보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세상은 이처럼 불공평하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정체성과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될 태어나고 자랄 환경을 선택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그 누구도 선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출발선에 서서 인생의 불공평한 레이스를 시작하고 있다.

출발선이 불공평하다고 인생 전체가 불공평한 것일까?

나는 이 질문에 확실하게 ‘NO’라고 말할 수 있다.

여러분이 태어나고 자라게 될 환경을 선택할 수는 없었어도 성인이 된 이후 여러분의 인생은 다른 사람이 아닌 여러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나도 인정한다. 우리의 정체성과 생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집안 환경은 앞으로의 인생을 좌우할 만큼 매우 중요하다는 걸..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 전체와 나의 존재를 규정해버리지는 못한다는 걸.

결국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왔던, 지금까지 어떤 것을 보고 배워왔든 간에 성인이 된 이후에 여러분은 언제든지 여러분의 생각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에 얽매여 한탄만 하면서 자신의 비참한 인생을 대변할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내어 변화하기를 거부하며 그렇게 계속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냈다가 나중에 후회와 증오 속에 사는 것을 선택하는 것도 우리 자신이고,
인생은 불공평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지금까지의 인생은 자신의 선택과는 별개로 원치 않은 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지만 앞으로는 내가 어떤 생각을 채워나갈 것인지와 어떤 인생으로 바꿔 갈 것인지 선택하는 것도 우리 자신이다.

전자의 인생을 선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렇게 사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변하기 위해 노력을 안 해도 되고 남에게 자신의 불공평한 처지를 대변만 하면서 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바꾸기 시작한다면 당신의 선택은 바뀔 것이다.
선택이 바뀐다면 당신의 행동이 바뀔 것이다.
행동 하나하나가 바뀐다면 인생이 바뀔 것이다.


그리고 생각은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고 학습하는 것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무엇을 학습하고 경험할 것인지는 우리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지금 처한 처지와 환경을 탓하지만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

한탄하면서 산다고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지금 자신의 상황이 마음에 안 들고 변화하기를 갈망하고 있는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관심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공부를 하거나 경험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분들에게 나는 ‘독서’를 권장한다.


독서를 통해 우리의 경험적 범주를 확장할 수 있다.


책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나 지식인이 평생 경험하고 깨달은 지혜를 책 한 권으로 압축해 놓은 엑기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을 통해 그들이 살았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고 새로운 지식과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독서를 통해 당신의 경험적 범주를 확장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확장하면 할수록 여러분의 생각의 차원과 질은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하지? 고민하는 분들에게는 그냥 서점에 가서 베스트셀러 코너에 나열되어 있는 책중에서 그냥 제목이 끌리는 것을 하나 선택해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처음부터 어려운 책을 골라서 읽어봤자 이해가 안 된다.

이해가 안 되면 재미가 없고 책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다.

베스트셀러에 놓인 책들의 경우 대부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많이 받고 검증된 책들이다. 그리고 전문서적과는 다르게 대중성을 고려하여 대부분 쉽게 이해하고 읽을 수 있도록 쓴다.

그래서 일단 책을 사서 읽어보라. 처음부터 하루 만에 다 읽는다던가 일주일 동안 읽는다는 둥 목표를 잡아서 강박적으로 읽지 말고 그냥 시간 날 때마다 한 장이던 두 장이던 읽어보라.

그러다 보면 재미있는 책도 있을 것이고 재미없는 책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재미를 느낀 분야의 책을 사서 읽으면 된다.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조금씩 느끼게 될 것이고 세상을 보는 눈과 귀가 조금씩 바뀌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책 읽는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될 수도 있다.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새로운 변화를 위한 한 발짝 도약이..


성인의 뇌는 기존의 연결을 끊고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내는데 14~21일이 걸린다고 한다.


여러분이 변화를 위해 책을 읽기 시작하고 새로운 지식과 생각을 형성하는데 14~21일이 걸린다는 말이다.

독서를 통해 새로운 뇌의 연결 패턴을 만들고 꾸준하게 지속하면 그 연결 패턴은 더욱 견고하고 강해진다.

여러분의 생각과 지식이 더욱 견고해지고 거기서 새로운 개념과 생각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점점 변화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것은 단순 과학적인 지식이나 책의 내용만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직접 경험하고 깨달은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전남 완도군에 속해있는 아주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

정 많고 욕심 없는 어부인 아버지 그리고 이런 아버지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섬으로 내려온 도시 여자였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섬 안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상남자 종(자)특(성)을 가진 안씨 집안의 여러 사건과 풍파가 있었긴 했지만 누구나 겪을 법한 사건들이고 한집안을 박살 낼 정도는 아니라 그럭저럭 고비를 잘 넘기며 순수하고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래도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랐다.

하지만 섬의 특성상 교육환경이 도시보다는 상대적으로 열악했다.

학원은 말할 것도 없고, 내가 다닌 중학교의 경우 전교생이 28명이었으며 같은 반 친구는 10명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10명 중에서 항상 뒤에서 놀았다.

도시에서 가끔 전학 온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도 도시에서는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내가 다니던 중학교로 오면 항상 1등을 할 정도이다.

그냥 공부만 안 했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섬에서도 유명한 ‘트러블 메이커’ 였다.

항상 사고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동네 사람들끼리 다 알고 지내는 작은 섬에서 누구네 아들내미가 술 담배만 했다는 소문만 나도 사람들은 크게 생각하는 그런 곳에서 나는 동네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안줏거리를 제공해주는 놈이었다.


사고의 스케일도 남달랐다.

시골의 특성상 자동차나 오토바이 키를 따로 빼놓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밤마다 친구들과 모여 오토바이와 차를 몰래 타고 놀다가 몇 달 안에 오토바이의 형태를 변화시켜주었고 친구 아빠 차를 타고 놀다가 폐차까지 시켜주기도 했다.

다행히 시골 인심 덕에 사고를 쳐도 몇 대 맞고 혼나고 사건이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어린 시절 정말 많은 사고(accident)를 쳤지만 사고(think)는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생각 없이 살았다. 생각이란 걸 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생각 없음’ 그 자체였다. 하기 싫은 건 하지 않았고 하고 싶은 건 그냥 했다. 본능에 충실하게 살았었으며, 본능을 억제하는 법을 몰랐다.

그렇게 생각 없는 청소년기를 보냈고 고등학교가 없었던 섬이라 광주광역시로 유학을 갔는데 고등학교 때도 다르지 않고 나의 무개념은 이어졌다.

이렇게 내 인생은 이냥 저냥 생각 없이 살다가 끝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순간이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군대’였다.


(내 인생 생각 ‘없음’에서 ‘있음’으로의 전환을 맞이한 군대..)

광주에서 공고를 다녔는데 졸업하고 바로 취업해서 돈 벌어서 자동차도 사고 술 마시고 놀고 싶은 생각만 있었는데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과 바람으로 대학교를 가기로 결심했다. 어머니는 좋은 대학은 바라지도 않으셨다. 그저 대학 졸업장만 받아도 만족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일단 수능을 다 찍어서 7~8등급을 받았고 이 점수로 돈만 주면 갈 수 있고 자취방이랑 최대한 가깝고 축구를 좋아했던 터라 천연잔디 구장이 있는 대학교를 가는 것이 나의 기준이었다.

과선택은 대학교 과를 보는 중에 ‘가나다’ 순에서 제일 앞에 보이고 간지(?)나 보이는 경영학과에 마음이 꽂혔다. 그래서 그곳에 지원서를 냈고 합격해서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나의 대학 생활은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학교에 가면 수업은 안 들어가고 축구동아리방과 학생회 방만 들락거리면서 낮에는 축구하고 밤이 되면 술만 퍼마시면서 대학 생활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타는 금요일에 친구들과 나이트 가서 놀다가 여성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여 새벽에 해장국을 먹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여성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숙취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상태에서 집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도 왜 이런 감정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무언가 모를 불안과 공포가 엄습해 왔다. 처음으로 내 미래에 대한 공포를 느낀 순간이었다.

이 공포는 자고 일어나서도 지속되었다. 그리고 내 20년 인생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정말 답답했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비싼 등록금까지 내고 대학까지 와서 매일 술만 퍼마시고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내 모습에 환멸감을 느꼈다.

뭔가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에 바로 대학교 1학기를 마친 후 휴학하고 ‘군대’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빠른 년생이라 일반 육군은 가지 못했고 그냥 최대한 빨리 갈 수 있는 해병대를 지원해서 갔다.

그리고 김포 2사단 경계근무 지역에 배치되었다.

일 이병 때는 무서운 선임들 눈치 보느라 아무것도 못 하고 일 만하고 눈치만 보면서 지냈다. 그리고 짬이 점점 차는 상병부터 군대 생활 긴장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심심함을 달랠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군대 책방에서 집어 든 한 권의 책 ‘빅터 프랭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였다.

난생처음 군대에서 집어 든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프랭클)'

난생처음 책이란 걸 읽어보았다. 하지만 내 인생에 그 책을 집었던 건 정말 행운이었던 것 같다. 다른 책이었다면 몇 페이지 읽고 말았을 수도 있다.

이 책은 “나치의 유대인 인종학살이 일어났던 인간 도살장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겪은 생사의 엇갈림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지 않고 인간 존엄성의 승리를 보여준 프랭클 박사의 자전적 체험수기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삶의 의미, 인생 등에 대해 스스로 질문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내 의지와 상관없이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그냥 사는 것 같이 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무의미하게 살아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 삶의 의미를 찾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책과 독서가 내 삶의 의미를 찾게 도와주는 나침판이 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전역할 때까지 50권이 넘는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 주위에 보이는 모든 사물과 현상들이 새롭게 느껴졌다. 눈과 귀가 밝아지고 사고가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 ‘없음’의 인생에서 생각 ‘있음’의 인생으로 점차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똑똑해지는 것 같았고 자존감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내 인생을 특별하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항상 가슴속에서 무언가 끌어 오르고 희망찬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이 기분이 너무 좋았고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계속 읽었다. 책에서 크게 감명받은 명언이나 문구는 잊지 않으려고 수첩에 적어놓기까지 했다. 군대에서 적은 수첩은 아직까지도 내 보물 1호로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전역 후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의 첫 번째는 책에서 느꼈던 넓고 넓은 세상을 글로만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이 아닌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이때부터였다. 내 꿈과 열정으로 활활 타오르던 20대 여정의 시작이


전역 후 곧바로 한 봉사단체의 아프리카 해외봉사 프로그램에 지원하여 아프리카 케냐에서 1년간 보냈고 한국에 돌아와서 몇 개월 뒤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발급받고 곧바로 호주로 날아가 2년을 살다 왔다. 그리고 IT의 꿈을 안고 서울에 상경해 열심히 IT 공부를 하여 취직하고 친구와 창업을 하다가 말아먹고 지금 구미에 내려와 공장일을 하고 있다.


군대에서 책을 읽기 전 ‘나’라는 사람은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도
군대에서 변화가 시작된 ‘나’도
아프리카에서의 ‘나’도
호주에서의 ‘나’도
서울에서 IT 회사를 창업한 ‘나’도
지금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나’도
모두가 분명 ‘나’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생각에 많은 변화가 있었을 때는 책을 읽기 시작하고 세상의 많은 지식과 지혜를 학습하기 시작했던 군대에서의 순간이었고 그 생각의 변화로 인해 내 선택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프리카를 선택하였고, 호주를 선택했으며, IT분야에서 한 획을 긋는 꿈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러한 선택들로 인해 나는 수많은 경험을 하게 되었고 이런 경험들이 모여 ‘나’라는 사람의 존재와 정체성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내 인생의 변화의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었던 근본적인 요소는 바로 ‘생각’ 이었다.


이 ‘생각’이라는 녀석은 어린 시절에 자라온 환경과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질 것인지 선택을 통해 만들어지도 했다.

나의 경우 책을 통해 내 생각을 새롭게 디자인하였고, 새롭게 디자인된 생각을 통해 많은 도전과 행동을 하면서 인생 또한 새롭게 디자인하기 시작하였다.

우리의 뇌는 항상 변할 준비가 되어있다. 1000억 개의 신경세포와 100조 개의 시냅스는 새로운 지식과 개념을 항상 만들어낼 준비를 하고 있다

결국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바꿀 수 없는 현실이 아닌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하고 한계 짓는 우리의 마음이 아닐까?

만약 자신이 변화를 갈망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지식을 학습하고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데 노력하자.

이건 상황이나 처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들의 선택의 문제이다.

우리의 뇌는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다.

새로운 생각을 만들고 새로운 길을 열어보겠다 선택한다면 우리의 신경세포는 바쁘게 움직일 것이고 다른 신경세포와의 교류의 날갯짓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낼 것이고 그 생각은 새로운 선택으로 이어질 것이고, 선택이 바뀌면 행동이 바뀔 것이다.

그리고 그 행동들이 쌓여가면서 우리의 인생도 바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처음에 데카르트의 명언을 통해 던졌던 질문인

우리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을 하는 걸까?


이 질문에 나는 둘 다 맞는 말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데카르트에게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생각을 통해 내 존재를 규정하고

생각을 통해 내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생각을 통해 내 인생을 만들어간다고 믿는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어떤 존재가 될지는 당신이 어떤 생각을 만들어나갈지에 대한 ‘선택’에 달려있다.

당신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당신이 어떤 생각을 만들어나갈지에 대한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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